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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그 날을 아십니까?

평화 강명옥 2005. 11. 2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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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아침 신문을 집어오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우리가 보는 신문 외에 다른 신문 하나가 더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광고 목적으로 놓은 모양이다 생각하고 들여오면 매일 넣겠구나 싶어서 놓인 자리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는 평소대로 보던 신문만 놓여 있고 새로 다른 신문이 놓여져 있지는 않아 그제 아침은 다른 집에 갈 것이 실수로 온 모양이다 싶었다. 외출했다가 저녁에 들어오면서 아직 바깥에 놓여 있는 신문을 계속 둘 수는 없어서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오늘 평소 보던 신문을 보고 난 후 어제 들고 들어왔던 잘못 배달된 다른 신문을 폐휴지 바구니에 넣기 전에 한 번 훑어보았다. 다 보고 마지막에 본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칼럼 속의  일화처럼 우리가 일본에 가서 똑같은 짓을 했었다면 일본은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반 백년 전의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간 미군의 유골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미국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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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 서울의 하늘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푸른 하늘이었을까요. 그 하늘 아래에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가 이끄는 일본의 보병과 기병, 포병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세가와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인들은 모두 떨면서 감히 한 사람도 큰소리 치는 사람이 없었고, 많은 조선 병사는 제복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서울 전역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는 하세가와를 대동하고 고종을 만났습니다. 하세가와는 군복을 입고 고종 앞에서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망한 을사늑약은 이렇게 체결되었습니다.

 

이때 하세가와는 “조선은 위협으로 복종시켜야 한다. 조선 조정(朝廷)은 선례가 있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선례(先例)란 10년 전의 일을 말합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군 제10연대가 경복궁을 기습했습니다. 작전명 ‘여우사냥’. 친러파였던 명성황후 제거 작전이었습니다. 조선군 경호부대장이 전사하자 병사들은 도망치고 저지선은 순식간에 붕괴됐습니다. 일본군의 선두엔 일본 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종의 침실로 들이닥쳤습니다. 고종이 소리치면서 일어나려 하자 낭인 한 명이 손으로 눌러 주저앉혔습니다. 다른 낭인이 칼등으로 옆에 있던 세자를 내리쳐 기절시키자 고종은 하얗게 질렸다고 합니다.

 

일본 낭인들은 황후와 궁녀들이 있는 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궁내부대신이 팔을 벌려 막아서자 낭인의 칼이 대신의 한쪽 팔을 잘랐습니다. 그래도 비켜서지 않자 다른 팔도 잘랐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낭인들은 황후를 찾아내 뜰 아래에서 난도질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그 순간에 할 수 있었던 일은 늙은 상궁 하나가 황후의 시신 얼굴에 수건 한 장을 덮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일본 낭인들은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이 낭인들이 시신을 능욕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고종과 조선의 대신들은 이 악몽과 공포에 10년간 더 떨다가 나라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지난 17일은 그렇게 우리나라가 망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8·15 때는 매년 성대한 기념식을 치르지만 11·17은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새로 태어난 신생국이라면 독립기념일이 최대의 명절일 것입니다. 미국처럼 독립을 쟁취한 경우에도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2000년의 역사 중에서 식민지가 된 36년은 그야말로 ‘한 점(點)’에 불과한 기간입니다.

 

그 점에 불과한 기간을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면 그것은 8·15가 아니라 11·17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족 지배의 먹구름 아래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질곡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수를 하자는 것도 외교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조상들이 망국의 순간에 로마에 저항하다 모두 자결한 마사다 언덕에 오릅니다. 거기서 “다시는 함락당하지 않으리”를 맹세한다고 합니다. 매년 11월 17일 우리가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8·15 때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것 못지않게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5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포로 1만여명에게 가혹행위를 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2000만명이 훨씬 심한 가혹행위를 당한 우리에겐 진실된 사죄를 하지 않습니다. 사죄가 아니라 망언을 하는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고 총리 후보로 부상합니다. 이제 8·15는 일본에선 야스쿠니 신사 참배일이 돼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종필(金鍾泌)씨가 일본에서 강연하면서 “명성황후 시해와 같은 사건이 일본 왕궁에서 일어났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하자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고 합니다. 11·17은 일본의 양심에 끼얹어지는 찬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조선일보/ 양상훈칼럼 / 2005.11.23 >

 

 

 
Sowing the seed of God's Word is never out of season.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일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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