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이야기

이명동 목사님의 의선교회 20년 목회에 감사드립니다

평화 강명옥 2012. 11. 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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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동 목사님의 의선교회 20년 목회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면 이명동 목사님이 우리 의선교회에 부임하신지가 20년이 됩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제게 의선교회는 하나님을 떠나 있던 20대를 넘기고 30대 초반에 다시 예배드리는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대학원 동기생으로 당시 전도사로 의선교회에 부임한 최상진 목사님의 인도로 1990년 1월 첫째 주일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최목사님은 이후 교회를 떠났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지금은 미국 워싱턴에서 노숙자선교 및 청소년운동을 하는 APPA(평화나눔공동체)를 만들어 이끌고 있습니다.

 

충정로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의 한 건물 2층에 있던 작은 교회는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야했습니다. 오십 명도 채 안되었던 교인들은 봉사를 가도 교인수련회를 가도 성가대 수련회를 가도 체육회를 해도 청년부부터 아이들까지 다 함께 움직였습니다.

 

20년 전 계시던 목사님이 떠나시고 한동안은 장신대 교수님들이 번갈아서 매주 설교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명수 장로님의 추천으로 이명동 목사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엊그제 같은데 20년이란 세월이 차곡차곡 흘렀네요. 그 세월만큼 매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믿음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지요.

 

가끔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이명동 목사님과 같은 분이 계신 교회를 다닌 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구요.

 

매사에 바른 모습으로 믿음의 귀감이 되시고 성도들을 위한 기도와 배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도 500명이 넘는 교회에서 생일 때마다 목사님이 보내시는 생일카드를 받는데 감사하면서도 그 수고를 생각하면 언제쯤 그만 두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교회 비용은 모두 성도들이 힘써 벌고 헌금한 것이라 함부로 쓸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오토바이 타고 청계천으로 물건을 사러 가시는 목사님. 교회 예뜰에는 목사님이 만드신 탁자, 의자, 소품들이 놓여 있습니다.

 

14년 전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 세 들었던 학교 건물을 내어주고 떠날 수밖에 없었을 때, 목사님의 기도와 노력으로 지금의 교회 터로 이전하게 되었고 오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의선교회에 오는 목회자들은 장화를 신고 삽부터 들어야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 장화들이 다 준비되어 있는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 그 자체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의 교육을 하는 목사님의 개인 역량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고 다양한지를 잘 알기 때문에 더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편안하게 대하시는 모습으로 인해 교인 누구도 목사님이 권위가 세다든가 어렵다든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20년 동안 목사님은 교회의 일이 바빠 안식년을 가보시지 못했습니다.

매년 한해가 저물 무렵 목사님이 목회 방향을 결정하시기 전에 당회, 권사회, 안수집사회와 모임을 합니다.

 

올해 권사모임을 할 때 이제는 안식년을 가보시는 것이 어떠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교회 일정상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목사님으로서는 아마도 은퇴하실 때까지 안식년 같은 호사는 누리시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명동 목사님,

감사합니다.

 

오랜 세월 의선교회에 계셔주신 것, 감사합니다.

요즘 이모양 저모양으로 힘들어하는 교인들을 위한 기도로 힘드실 텐데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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