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추석에 시댁에 다녀왔다. 늘 하던 대로 전을 부치며 음식을 준비했고 가족들이 모여 감사예배를 드리고 성묘를 다녀왔다.
이번 추석이 다른 때와 달리 특별했던 것은 어머니의 노래 녹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했던 남편은 작곡에도 관심이 많았고 얼마 전에 관련 프로그램과 기계들을 구입해서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있던 중이었다. 예전에 만들었던 곡을 음을 일일이 다시 입력하였고 내가 찬양하는 것을 녹음하기도 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노래를 녹음한 뒤 씨디에 구워 형제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성가대를 오래 하셨고 은퇴 권사님이 되신 뒤로 성가대는 그만두셨지만 대신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실버합창단의 멤버로 활동하고 계신다. 평소에도 좋아하시는 노래는 피아노를 직접 치시면서 부르시고는 한다. 어머니의 노래를 녹음하기로 하고 좋아하시는 찬송가와 가요의 목록을 받아 피아노 반주를 미리 준비하였다. 그리고 복잡한 작은 스튜디오 장치들은(?) 포장해서 가져갔다.
시댁에 도착해서 바로 거실에 장치들이 풀어져 설치되었고 스튜디오가 차려졌다. 그리고는 그 날부터 바로 어머니의 노래 연습이 시작되었다. 송편을 빚으시다가도 한 곡, 전을 부치시다가 두 곡, 아들과 함께 세 곡, 며느리와 함께 네 곡.... 그리고 명절 행사를 다 끝마친 뒤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노래 녹음이 시작되었다. 며칠에 걸쳐 준비했던 어머니의 노래는 모두 녹음되었다. 그러기까지 어머니가 부르신 것은 연습까지 합쳐 적어도 백 번에 가까웠다. 얼마나 진지하게 열심히 부르시는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결국은 목소리의 세미한 부분까지 선명하게 들리는 녹음 탓에 그리고 찬송가가 반주에 맞춰 부르는 것이 음이 상당히 높아서 어머니의 마음에 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곡을 어머니의 음에 맞춰 적절하게 조절해서 다시 준비하기로 하고 녹음 작업은 끝을 냈다.
예전에도 명절이면 시간 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찬송가를 부른 적이 가끔 있다. 워낙 찬양하기를 좋아하시고 나 역시 찬양을 좋아하는 터라 그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 나는 진주 강씨, 가족들이 모이면 김해 김씨들 가운데 어머니와 나만 성이 다르다. 그럼에도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금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어머니는 집안의 기둥이고 중심이시다.
내가 어머님께 붙여드린 별명이 '천사표 어머니'이다. 그것은 오랜만에 시댁에 가도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겨우 설거지만 담당하는 것이 죄송해서 붙여드린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격동의 세월이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시고 돌보시는 마음 자체가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만큼 좋으신 것이 그 이유이다.
다음 달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일이 돌아온다. 그 때 어머니 노래의 본격적인 녹음 작업이 다시 있을 예정이다. 어머니의 독창을 다 녹음한 다음 나도 끼어서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곡을 녹음할 생각이다. 우리가 떠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제발 아프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어머니의 고운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섞고 싶기 때문이다.
When we put our cares in God's hands, He puts His peace in our heart.
우리의 염려를 주님 손안에 내려놓을 때 주님은 주님의 평화를 우리의 가슴에 내려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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