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생일 상

평화 강명옥 2005. 9. 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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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생일 상을 차렸다. 평소 먹는 반찬에 미역국 끓이고 나물 몇 가지 더 무치고 전을 조금 부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아침부터 한꺼번에 새로 만들려고 하니 상당히 분주했다. 결혼 생활 10년 정도 하다보니 이제는 둘이 먹는 반찬 양을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힐 정도로 적당하게(?) 잘 맞춘다.

 

요 몇 년 간 이런 저런 이유로 생일을 생각하고 챙길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작년 내 생일날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나긴 환란으로 인해 더욱 그러했다. 앞으로도 이 환란은 일년 이상 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 이맘때쯤 이 모든 악몽이 끝나고 정말 새로운 기분으로 남편의 생일 상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보면 결혼 전의 생일 상이 가장 시끌벅적 했다. 어찌하였건 어머니가 음력으로 차려주신 상에 앉아 감사하게 먹기만 하면 되었고 밖에서는 양력으로 친구들과 함께 또 따로 챙겨 먹었을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별도로 챙겼으니까...

 

결혼하고 나니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내 생일 상을 내가 차리는 것이었다. 물론 따로 외식을 하기는 해도 아침에 먹을 미역국은 내가 끓여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엌의 주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아직도 생일 때면 먼저 연락을 하시고 챙겨주시는 친정어머니는 하루 전날 전화하셔서 남편 생일 상 꼭 잘 챙기라고 훈수하셨다. 결혼 전 워낙 건망증이 심해 내 생일도 스스로는 챙기지 못했던 나를 아직도 잘 믿지 못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떡을 사는데 결혼 전까지 생일에 꼭 떡을 만들어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결혼 적령기부터 올해가 마지막 챙겨주는 생일이다 싶어 떡을 만드셨던 어머니는 내가 워낙 늦게 결혼하는 바람에 정말 오랜 기간 나이든 딸의 생일 떡을 만드셨었다.      

 

값에 비해 앙증맞은 크기의 생크림 케익을 사는데 직원이 양초 수를 물었다. 숫자를 이야기하고 나니 새삼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남편과 지천명을 앞둔 나의 나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나이를 살며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또 그 뜻대로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Today's burdens can strengthen you for tomorrow.
 오늘의 짐이 내일을 위해 당신을 강하게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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