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이야기

[다시 빛과 소금으로]<5> 고양 의선교회 (동아일보)

평화 강명옥 2011. 8.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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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까지 仁術을” 의사들이 세운 교회

《‘나 이한종(74)은 이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거동도 힘들고 복수(腹水)는 점점 차오릅니다. 호흡도 버겁습니다. 희망 없이 살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게 한 줄기 희망을 쥐여준 분들에게 이제는 얼마 되지 않는 저의 전 재산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대아파트 보증금 200만 원. 살 수 있다는 희망보다 더 큰 희망은 내가 사랑받으며 이 세상 떠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 의선교회에 헌금으로 드리니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11월 18일.’》

앞뜰에서 바라본 교회는 북카페나 운치 있는 펜션 같다. ‘교회 같지 않은 교회’를 추구하는 까닭을 물었더니 ‘주민들이 부담 없이 쉬고 갔으면’ 하는 이명동 담임목사의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배당도 지하에 만들었다. “웅장한 건물이 아닌 베푸는 행동으로 교회는 드러납니다.” 이 목사의 말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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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동 담임목사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의선교회(예장 통합). 벌써 한 해가 지났지만 이한종 씨(생존)의 유언장을 앞에 두고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이명동 담임목사(52)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희가 안 받을까봐 거동도 힘드신 분이 법무법인 사무실에 가서 공증까지 받아 놓으셨더라고요. 몇 번을 사양했지만 한사코 쥐여주시는 어르신의 손을 붙잡고 저도 울고 어르신도 울었습니다.”

교인도 아닌 이 씨가 의선교회와 처음 만난 건 2009년 한 복지관을 통해서였다. 신도 중 의사 간호사 등 40여 명의 의료진이 매월 복지관을 찾아 몸이 불편한 지역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중 거동이 불편한 이 씨의 소식을 들었다. 집에 찾아가보니 이 씨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고 복수까지 차올라 천식과 탈장 증상을 보였다. 그날 이후 교회 측은 매월 이 씨를 방문해 진료와 약 제공, 생활비 지원, 이불 빨래 등을 해 주고 있다.

의선교회는 1981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의료선교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기독교인 의사 28명이 ‘의료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교회를 세우고 방글라데시로 의료선교 봉사단을 파송했다. 이렇게 시작된 의료봉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997년 경기 고양시로 옮겨와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 내과, 치과, 정형외과, 통증외과, 정신과, 피부과와 한방 등 다양한 분야의 진료를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0명의 사람이 진료를 받고 약도 타 간다. 주민들은 의선교회의 의료봉사팀을 ‘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

1년에 하루는 지방 의료봉사의 날. 지금까지 제주 북제주, 충남 몽산포, 인천 강화, 충북 옥천 등의 지역을 방문해 진료, 약 처방, 미용,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봉사를 해 왔다. 한 번 지역이 정해지면 3, 4년간 지속적으로 방문한다. 올해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옥천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 600여 명을 진료했다. 옥천 방문은 네 번째다. 방글라데시, 몽골, 미얀마 등 해외에서도 꾸준히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의선교회 교인들은 13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미얀마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미얀마 현지에서 어린아이를 진료하는 모습(왼쪽).오른쪽은 1981년 처음 교회를 설립할 당시 모습이다. ‘의료선교교회’라는 팻말이 보인다. 의선교회 제공

2년 전 몽골 의료봉사를 갔던 한상환 씨(56)는 다리를 다친 한 소년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다리에 뼈가 보였죠. 피부조직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방치했다가는 다리를 절단해야만 할 상황이었어요. 보호자도 없고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던 어린 소년을 저희가 데려와 다리를 잃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 담임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신 두 가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그대로 행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교회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작은 교회 건물이 그 흔한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 하나 없이 주변과 어우러져 있었다. 최근에는 이 동네에 처음 온 대학생들이 교회를 ‘북 카페’로 오해하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교회 앞엔 아담한 연못과 푸른 나무, 벤치가 어우러진 작은 뜰도 있다. 흰 깃발이 꽂힌 종탑이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교회는 크고 웅장한 건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베푸는 사랑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교인 부흥을 목표로 삼기보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 ‘의(義)롭고 선(善)한 교회’가 되는 것이 저희들의 꿈 입니다.”

이 목사의 말이다. ‘의선교회’라는 이름에는 ‘의료선교’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명동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한태인 목사

신도 수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목회

한태인 목사(81·사진)는 서울 도봉구 창3동에 있는 도원교회 원로목사님이다. 내가 20대 청년이었을 때 평생의 가르침을 주셨다. ‘사람을 외면하고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는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지금 나의 목회철학이다.

목사님은 신도 수가 아니라 ‘사람’에게 집중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늘 말씀하신다. 매번 의료봉사를 나갈 때마다 되뇌는 말이다. 은퇴 이후에도 활발히 강의 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님. 남을 탓하기 전에 항상 교회의 갱신을 강조하셨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비판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며칠 전 전화를 드렸을 때도 같은 말씀을 당부하셨다.

고양=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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