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동네잔치

평화 강명옥 2002. 6.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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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폴란드가 미국을 이겨주는 바람에 느긋하게 경기를 지켜본 날이었다.
드디어 진 전적 없이 조1위로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남편과 나는 TV에서 보여주는 시청 앞,
잠실운동장, 부산역 광장, 전주종합운동장 등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시내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 위에 올라가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웃고 있는 버스기사의 웃음이 참
그리 밝아 보일수가 없었다.
길이 막혀도 좋다, 그저 이 기쁨을 표현하는 것으로 족하다...
구르는 공하나가 이 모든 것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다가 창 밖에서 들리는 ‘대~한민국’‘오~필승 꼬레아’ 소리에 마음이 동한 남편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아침 출근할 때부터 빨간 티를 계속 입고 있었는데 새삼 나의 티를 본 남편 왈,
“자기야, 나도 빨간색 티셔츠 주라. 다른 색깔 옷 입고 나갔다가는 눈총 받을 것 같아.”

그래서 밤 12시 넘어서 둘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손잡고 밖에를 나갔다.
요즘 여름이 다가오면서 아파트 상가 생맥주집 앞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지만 평소보다 다섯배는 많은
인원들이 모여 계속 ‘대~한민국’‘오~필승 꼬레아’를 외쳐대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 끼어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 한가해 보이는 듯한 도로 건너편 아파트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그 쪽 생맥주 집 앞도 사람으로 넘쳤지만 다행히 한자리가 있었다.
생맥주와 안주를 시켜 놓고 사람들과 같이 앉아있는 것으로도 함께 한다는 분위기(?)가 났다.

앉아 있자니 시청 쪽에 응원 나갔던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태극기를 손에 들고 지나갔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대~한민국’을 외쳤고 응원으로 지쳐 보이는
학생들은 웃으면서 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지나갔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파트 앞 상가에 사람들은 줄지 않고 더 늘어났다.
사람들이 번갈아 탁자 위에 올라가 ‘대~한민국’을 선창하고 아리랑을 부르고 하면서 보통 때는
서로 알지 못하고 지내던 아파트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동네잔치가 계속되었다.

두시에 집에 들어오고 난후에도 남편은 TV에서 보여주고 또 보여주는 축구 경기가 점점 더 재미
있어진다면서 눈이 점점 더 말똥말똥해지는 것이었다.
너무 졸려 눈이 감기는데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남편의 말.
“어서 자, 나는 조금 더 보고 잘께. 그런데 보면 볼수록 너무 재미있네. 너무 재미있어!”


Kind criticism is always the right kind.
(친절한 비판은 항상 옳은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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