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잠자는 공주

평화 강명옥 2002. 6. 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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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른 날 나는 잠자는 공주가 되었다.

공무원들이 쉬는 넷째 토요일이라 오랜만에 늦잠을 잔 남편과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친정어머니가 전날 오셔서 된장을 끓이시고 호박잎을 쪄놓으시고 새로 김치까지 해 놓으신 것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켠 TV에서는 아침부터 거리로 나와 자리를 잡고 있는 응원단의 모습에 대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경기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갑자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날부터 식은땀이 나고 힘들더니만 밤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힘들었던 것 같다.

경기시간이 되었는데 거실에 누워 눈을 감는 내게 남편은 "어! 축구 안 봐?"라고 묻는데 그 물음이 아련하게 들리면서 잠이 들었다. 크게 틀어 논 TV소리도 못 듣고 꿈속을 헤매던 내가 눈을 뜬 것은 승부차기에서 우리 팀이 마지막 볼을 차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수가 찬 다섯 번 째 공이 성공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내가 처음 본 경기 장면이었다.

역시 '잠자는 공주는 잠에서 깨었을 때 행복을 찾는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했다. 오늘 경기를 볼 수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시간에 잠을 잔 사람은 아마도 나 혼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쉰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와 전국 방방곡곡에서 환호하는 장면들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남편과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참 잘했다." 그 말 외에는 다른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터어키와 세네갈의 경기가 끝난 후 11시 반이 되었을 때 드디어 우리는 빨간 티셔츠를 챙겨 입고 밤거리를 나섰다. 택시로 종로1가까지 갔는데 가는 내내 흥분한 기사의 우리 팀과 앞으로 상대할 팀의 선수 및 전략 분석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종로거리에는 승용차에 반 트럭에 가득 가득 찬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경적을 울리며 달리고 있었다. 거리 양측에 줄을 이어 서 있는 젊은이들은 하늘로 계속 폭죽을 쏘아대고 있어서 거리는 화약냄새로 가득했다. 그리고 거리 구석구석에는 한떼로 몰려 쉬지 않고 '대-한민국'과 '오, 필승 꼬레아'를 합창하고 있었다.

'젊음이 좋네' 남편과 내가 동시에 했던 말이다. 그 많은 인파 중에 우리 같은 중년의 얼굴은 거의 볼 수 가 없었던 탓이다.

손잡고 '축제의 밤길'을 거닐면서 우리 부부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환호하는 거리의 탄성과 모습들에 둘 다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오늘같이 좋은 날, 마음껏 기뻐하여라.

그리고 오늘 이 나라를 좋아했고 사랑했던 기억을 잊지 말고 살아라.'

하루 동안 잠자는 공주가 되었던 나의 젊은이들에 대한 바램이었다.


We are spiritually blind if we cannot see God's hand in nature.
하나님의 손길을 자연 안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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