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마음으로 영목항을 떠나 가장 가까운 바람아래해수욕장을 비롯해서 여러 군데를 들러보고 우리가 머물 곳을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났는데 표지판을 보니 우리가 길을 놓친 것을 알아서 거꾸로 다시 돌아가 길을 찾아 들어갔다. 보통 해수욕장이 길 옆에서 가까운데 비해 상당히 좁은 길을 한참을 들어간 후에야 '바람아래'를 찾을 수 있었다. 조용하기는 한데 시설이라든가 여러 면에서 본격적인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돌아 나오는데 갈림길에서 좀 편하지 않을까 생각에 우리가 들어온 길과 다른 쪽 길로 향하였다. 보통은 그렇게 나가면 큰길이 나오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우리의 오판이었다. 가다보니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간신히 차가 다니는 길이 나오더니 논둑 길로 연결되고 어째 점점 산골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길이란 것이 어쨌든 서로 통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갔는데 그렇게 두 시간을 안면도 내륙 구석구석을 돌고서야 간신히 큰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역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편리한 곳이라는 것을 절실히 체험한 후에 들어보았던 꽃지 해수욕장으로 갔다. 상당한 규모의 리조트가 들어서 있고 주변에는 온갖 모양의 펜션과 음식점이 몰려 있는 꽃지는 다른 해수욕장에 비하면 대도시라고 할 수 있었다. 해안이 크고 모래사장이 넓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해가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해안가를 지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숙박할 적절한 곳을 찾았다. 꽃지 해수욕장의 명물인 '할미 할아비 바위'가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잡은 곳이었는데 누워서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은 겨울철이면 사진작가들이 해넘이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여장을 푼 후 바닷가로 나갔다. 밀물 때라 한참을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조금씩 밀려들어오고 있어 발을 담그고 서서 보자니 점점 물이 높이 차 올랐다. 무공해 바다, 무공해 공기라는 것이 저절로 느껴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바닷가에 있는 '할미, 할아비 바위'는 바닷물에 조금씩 그 형체가 부서지고 있는 듯 하였고 주위에는 부서져 떨어진 붉은 색 돌 조각들이 마치 전시물처럼 널려 있었고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바닷가 옆에서 보글보글 끓는 해물탕을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밤이 깊어갔다. 8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서 횟집을 한다는 주인으로부터 요즘 불황이라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 외져서 도회지처럼 학생아르바이트생을 쓸 수 없어 고정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 그렇게 많은 펜션이 운영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대로 버틴다는 이야기, 안면도 땅값이 비싸다는 이야기, 안면도가 가족들이 오면 좋은 분위기라는 이야기 등을 들었다.
하늘과 바다를 보며 푹 잠든 밤이 지나고 다음날은 돌아오는 길에 서산간척지구를 지나 왔다. 바다를 막아 만든 넓은 논을 바라보며 현대 정주영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현대와 같은 세계적 기업을 일으키며 만든 수많은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은 사람은 각자 타고난 역량과 그릇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러한 창의적인 생각과 실천하는 힘은 교육한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서산 농장에서 키운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갔던 정주영씨가 어찌하였건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며 다른 누가 할 수 없는 일이었지 않나 싶다.
시원한 서해 바다 바람을 실컷 맞고 돌아오는 길 역시 시원하였다.
To get the most out of life, make every moment count for Christ.
가장 나은 삶을 살려면 매순간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