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수집癖 그리고 '아무것도 못버리는 사람'

평화 강명옥 2001. 12. 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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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 많고 생각 많던 중고등 학교 시절 친구들은 매일 교실에서 만나면서도 편지들을 주고받았었다. 특히 방학에는 그 횟수가 늘었는데 이 편지 주고받기는 대학교 때까지로 끝난 것 같다. 친구들에게서 받았던 1,000통에 가까운 편지들이 나의 첫 번 째 수집품이었다. 이 첫 번째 수집품은 상당히 오래 간직하다가 내가 하나님을 떠난 지 10년 만에 돌아온 20대 후반 어느 날 모조리 태우며 정리하였다.

2. 친구들에게서 편지를 받을 때마다 따로 우표를 정리해 놓곤 하였다. 나중에는 취미가 되니까 새 우표가 나올 때를 기다려 사서 모았다. 우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에는 가는 곳마다 우표만 눈에 들어 왔었던 것 같다. 1,200장이 넘는 우표는 나이 40이 넘을 때까지 들고 다녔다. 우표들은 2년 전 집안 정리를 하면서 우표수집을 한다는 10층 꼬마에게 모두 주었다.

3. 내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대강 한 5-6세쯤이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꿈을 꾸고 살아왔다. 총천연색으로 나타나는 꿈은 많이 기억날 때에는 대여섯 가지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나의 꿈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었다. 게 중에는 얼마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히 보여준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썼던 것 도 같다. 이 꿈 기록은 노트로 30권 가량 되었었는데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수집품이었다. 이것 역시 모았던 편지들을 태울 때 같이 태우며 정리하였다. 하나님을 잊고 산 나의 과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꿈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았다.

4. 늘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만나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 나는 만나는 장소를 같은 장소보다 계속 다른 장소를 물색해서 정했고 가는 곳마다 두 개씩 성냥갑을 가져다가 크기별로 잘 정리를 해놓았었는데 1,000개가 넘게 상자에 담아 쌓아 두었었다. 그것은 일종의 나의 생활 기록이었으므로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을 보며 즐겼던 것 도 같다. 이 네 번째 수집품들은 30대 어느 날 갑자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모조리 버렸다.

5. 어려서 만화를 즐겨보기 시작하면서 중독에 가까운 책읽기 취미가 시작되었었다. 나의 독서 방법은 주제에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읽는 남독이었다. 시간 나면 종로서적에 가서 보통 서너 권씩의 책을 읽고는 하는데 이러한 습관이 책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졌고 상당히 많은 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사 몇 번하면서 전공에 관한 책을 빼놓고는 거의 정리를 하였다.

6. 한동안 미술품 감상에 빠져 산 기간이 있었다. 그 무렵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인사동 골목골목에 있는 화랑들을 순회하였고 팜플릿과 도록들을 구입하였다. 대부분은 그냥 제공되었으나 제법 잘 만들어진 도록은 판매를 하였는데 구입 비용도 꽤(?) 나갔다. 이 열병은 몇 년 지속되었고 모아진 양도 상당하였다. 이 도록들은 15년 정도 지니고 있다가 이번 여름 집안을 정리하면서 과감하게 버렸다.

7.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올해까지 매년 수첩을 한 권씩 사용였으니까 총 24권의 수첩이 모아졌다. 그 수첩들에는 나의 모든 스케쥴과 만난 사람들의 이름, 장소, 읽었던 책이름, 그리고 주소 및 전화번호들이 적혀 있었다. 수첩 하나의 부피라야 얼마 안되어 책상 서랍 속에 계속 보관해 왔었고 가끔 내가 그 때 어떻게 지냈더라 궁금해질 때마다 펴보곤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이번 여름 집안 정리를 하면서 최근 5개만 남겨놓고 다 버렸다.

8. 내가 모았던 것 중에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시집과 영문소설책이다.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한동안 시집을 읽고 모으는 것에 열중했던 기간에는 월급을 탄 날이면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시집을 몇 권씩 사고는 했는데 지금 150권 정도 있다. 그리고 아치 저녁 출퇴근하면서 전철에서 즐겨 읽던 포켓북 영문소설이 70권 정도 된다. 이 영문소설은 이번에 집안 정리하면서 버리려고 내놨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생각해서 다시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보게 되지가 않는데 언젠가는(?) 다시 한번씩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만 굴뚝같다.

필요 없다 생각되면 과감히 버리는 나의 버릇으로 인해 친정어머니께는 '무엇이든지 잘 갖다 버리는 아이'로 깊이 인식되어져 있다. 요즘에도 곧잘 가끔씩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사다 놓으시는 것을 취미로 하시는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 중에 많은 것이

"지난 번 내가 사다 놓은 ㅇㅇㅇ 버렸지?"

"아니요, 저기 장식장 밑 여닫이 열어보시면 있어요" 이런 식이다.

몇 달 전에 교회 권사님이 모임에서 읽게 된 책이라고 권해주신 책이 「아무것도 못버리는 사람」(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역/ 도솔)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씌어진 대로 실천한 것이 집안 정리였다.

거의 3주에 걸쳐 시간 날 때마다 책, 서랍, 옷, 그릇 등을 정리하였는데 놀랍게도 커다란 쓰레기봉투로 15개는 내다 버렸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연일 내다버리는 것을 본 경비아저씨는 이사가느냐고 확인할 정도였다. 그렇게 버렸는데도 집안은 별로 치운 티가 안 난다.

문득 내가 떠난 뒤에 내가 지녔던 것들을 치울 누군가의 심정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해가며 살자. 하나님이 부르시면 지체 없이 떠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데...'

True compassion will put love into action. 진정한 동정심은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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