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아이 없는 福

평화 강명옥 2001. 12. 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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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들처럼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될 줄 알았다. 40이 다된 아주 늦은 나이에 하면서도 요즘은 늦게 많이 낳으니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러나 결혼 후 일년이 지나자 주위에 계신 분들이 걱정들을 하시기 시작하였고 스스로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임전문병원을 소개받아 다니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 우리 부부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임신의 기미는 보이지가 않았고 결국 의사의 권유로 인공수정까지 시도하였었다. 마지막 방법이 시험관 아기 방법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되는가 하는 남편과 나의 생각 일치로 하지 않았다.

더 늦으면 정말 아이를 가질 수 없겠구나 하는 위기 의식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병원에 계속 다녔었다. 일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로 인해 임신이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에서였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의 '이상하게 될 것 같은데 안되네요'하는 말씀을 여러 번 들은 어느 날 후배로부터 대학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아이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지 1년 반이 지난 뒤였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고 기도하고 하는 가운데 '그래 이렇게 무작정 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다. 활동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면 받고 안 주셔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하는 결론을 내리고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는 가운데 필요성을 느껴 뒤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 남편의 총선 출마로 인한 여러 가지 일로 무척 바쁜 시간들을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바쁜 사정을 아시고 시간을 늦추시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가끔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시는 성도님들께 농담처럼 말을 하였었다.

'여선교회에서 제 결혼 기도를 하신 지 7년 만에 제가 결혼을 하였는데 아이도 7년 후에 주실 지도 모르지요'

그동안 남들이 하는 거의 모든 것을 해보았다. 친정어머니는 끊임없이 좋은 한의원과 병원 목록을 가져 오셨고 그 때마다 따라 나서야 했으며 시어머니를 좇아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지방에 갔다 오기까지 하였다. 거의 쉬는 날 없이 한약을 먹었으며 주위 분들이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방이라고 가져오시는 이름 모를 약도 먹었고 쑥 뜸에 요가까지...

그러면서 병원에서 아이를 갖지 못해 불행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이도 2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까지. 집안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약한 몸으로 해보라는 것은 다 해보고 다니는 모습들.....지금쯤 만났던 그 분들이 모두 아기를 가지는 축복을 받았기를 다시 기도해본다.

이제 결혼 후 6년이 되어 가는 요즈음 나는 서서히 '아이 없는 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건강이 여러 가지로 안 좋아져서 여러 번 입원하는 가운데 내 몸에 혹이 너무 크게 자라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장 수술을 권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설사 내 상태가 절망적이라 해도 아직 아이를 포기할 수 가 없군요. 기도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혹으로 인한 통증이 심해져 가는 터에 주위 여러분들의 '아이가 없어도 할 일이 많지 않느냐. 건강을 우선 생각하라'는 말씀을 많이 듣고 무엇보다도 나의 건강으로 인해 노심초사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 속에서 '아이 주시는 것도 복이요, 아이 안 주시는 것도 복이다'라는 기도가 떠오른다.

The conversion of a soul
is the miracle of a moment; the growth of a saint is the task of a lifetime.
영혼의 변화는 한 순간의 기적이지만
성도의 성장은 일생의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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