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이야기

결혼 잘 한....

평화 강명옥 2001. 12. 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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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얼마 지나서 손님과 저녁을 하게 되었다. 태국에 파견되어 대사관(일하던 곳이 외교부 산하기관이라 사무실이 대사관에 있었다)에서 일하던 때 그 곳에서 근무하시던 참사관이 일이 있어 잠깐 한국에 나오신 것이었다. 태국 파견 당시 나이 많은 노처녀 과장시절이었고 추석에 혼자 외로이(?) 집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참사관님 부부가 김치를 담궈 가지고 오셔서 무척 놀라기도 하고 감사한 일이 있었다.

귀국한 후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신랑이 오랫동안 외교부에 근무했던 사람이라 그 참사관님도 신랑을 잘 알고 계셨다. 대사관 소식과 우리 기관 소식 등을 반갑게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는 도중 갑자기 참사관님 왈,

"강집사님은 헌금을 많이 해서 시집을 잘 갔다고 생각해요"
"예? 아, 예....그렇게 생각하세요?"

(태국한인교회의 같은 성도이셨고 집사님) 참사관님의 확신에 찬 말씀으로 인해 난 확실하게 "헌금을 많이 해서 시집 잘 간 여자"가 되어버렸다.

당시는 기관의 정책으로 파견된 인력들이 약 6 개월 간 근무하고 귀국하던 때였다. 얼마나 오래 근무할지 확정이 안된 상태였는데 나는 태국에 파견된 직후 교민들이 나가는 한인교회에 바로 등록을 하고 성가대에서 활동을 하였다.

몇 달이 지나서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다. 한인교회가 교인 수는 500여명으로 많았으나 나같이 일정기간 파견 나왔다가 돌아가는 신도가 많아서인지 교회 건물이 없이 주일에 호텔을 빌려 예배를 보는 형편이었다.

강사로 오신 목사님께서 부흥회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교회 건축에 대한 설교를 하신 후 각자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헌금을 하자고 권고하시고 다들 동시에 기도를 하였다. 얼마를 해야 하나요? 그 때 눈앞에 커다랗게 떠오르는 숫자는 100,000이었는데 가슴이 철렁하였다. 100,000원이 아니고 100,000바트(4,000달라)였다. 맙소사...

당시 나의 해외수당이 월 1,800달러 약간 넘었는데 석달치를 한꺼번에 받았었다. 마침 삼일 전에 생활을 하자면 신용카드가 있어야 할 것 같아 확인했더니 외국인은 4,000달러를 예치하면 은행에서 발급해준다고 하여 십일조 헌금과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탈탈 털어 은행에 맡겼는데 바로 그 금액이었다. 어떡하나...그러다가 하나님께 탄원(?)을 하였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생활은 해야하니까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확정되면 찾아서 헌금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에 사무실로 갔다가 너무 놀랐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3주 후에 귀국하라는 공문이 팩스로 와 있었다. 월요일에 비서를 시켜 돈을 찾아왔고 수요예배에 가면서 헌금을 하였다. 그 이틀 후 금요기도회가 있었는데 벌써부터 담당하시는 집사님이 간증을 부탁하셨던 터라 무엇을 이야기할 까 계속 기도하던 중이었다.

금요일 저녁 교회에 가기 전 기도를 하는데 '건축 헌금을 하게 된 경과'를 말하라는 확신이 왔다.
그러나 그 것은 나의 상식(?)과 자세와는 먼 이야기라 그냥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떠났다가 10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는가의 경과를 이야기하리라 마음먹고 교회로 갔다. 막상 간증 시간이 되자 약 10분 정도가 시간이 주어졌는데 문제가 발생을 했다. 내가 나의 말을 조절을 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으로 나의 말이 끝나지를 않았고, 계속 '건축헌금'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초조감으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세상의 판단에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기로 마음을 바꿔먹고 부흥회에서 어떻게 사인을 받았고 어떻게 하나님과 타협하기를 원했고 그 타협이 기가 막히게 받아들여져 다음날 귀국명령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이야기는 바로 끝났다.

그 날 저녁에 약 50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였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하나님께 다시 붙잡혀 오게 된 것과 헌금 이야기가 상당히 퍼졌고 기존 성도들이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하였다. 불과 몇 개월 간 출석했던 나의 헌금 순종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들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당시 태국 화폐와 한국화폐를 비교할 때 한국 화폐가 몇 배로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보면 큰(?) 금액으로 생각되는 액수이기는 했다.

한인교회는 그 부흥회가 계기가 되어 3년 후에 좋은 지역의 좋은 빌딩의 한 층을 온전히 구입해서 설립된 지 몇십년 만에 헌당예배를 드렸고 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한인교회를 다니다 귀국했던 신도들과 만나시는 자리에서 자세하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매년 한번씩 목사님과 사모님이 한국을 방문하실 때 만나 뵙게 되는데 뵐 때마다 "집사님의 귀한 헌신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시는데 참 들을 때마다 민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이분들께는 아마도 계속 집사로 불릴 것 같다)

결혼한 지 벌써 7년째로 접어들게 되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더 좋아지고 더 이뻐만 보이는 남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나를 잘 시집보내셨다는 것은 확신하는데 과연 그것이 태국에서 한 헌금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To understand God is impossible-to worship Him is imperative.
 하나님을 이해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그분에 대한 경배는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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