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천사표 시어머니가 쓰신 詩

평화 강명옥 2001. 12. 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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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올해 73세이시다.
권사님으로 오십 년을 넘게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으시고 모든 예배에 참석하신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셨던 어머님은 수영을 잘하시고 자전거를 잘 타신다.
젊은 시절에는 오남매를 키우시며 아버님을 도와 사업도 하셨다고 한다.
경로대학 합창반원이시고 가끔 강의도 하시며 새로 나온 노래의 반주를 연습하신다.
전화로 듣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10대 소녀의 목소리이다.
삼씨(맘씨, 솜씨, 맵씨)가 뛰어나신 분이다. 내가 붙인 별명이 '천사표 시어머니'이다.
평생을 돌아보며 시를 쓰셨다고 했다.
어머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갈대밭에서

李 順 女

푸른 갈대가 회색 갈대로 변해버렸구려
허허 벌판에 서서
시집살이에 숨어 우는 바람소리처럼
허전한 웃음인지 힘없는 속삭임인지
흔들흔들 쓰러질 듯 넘어질 듯
지팡이를 짚은 듯이 다시 서는 그 모양이
고고한 오기인지 한 가닥의 자존심인지
가냘픈 그 몸매가 안타깝기 그지없네
먼 산 바라보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나도 몰래 어느덧 놓쳐버린 그리운 그 날들을
그리워한들 무엇하리
떠나버린 아쉬움에 멍든 가슴 열어놓고
헝크러져 얽힌 무거운 짐 다 내려놓았으니
이제는 때묻은 옷도 벗어놓고
진흙 묻은 신발도 벗어두고
황혼의 뜰에 서서
우리 님 손 붙잡고 우리 님 품안에서
기도하며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도 추고
모자람의 아쉬움 속에서
피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행여나 어쩔 새라
조마조마 키워온 내 아들딸들
우리 님 맞아들여
들국화 내음 가득한 소박한 시골길을 거닐며
오순도순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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