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여자 과장님 (2)

평화 강명옥 2001. 12. 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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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 늘 직원들과 회의를 하였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지원금을 받고자 하는 단체들을 모으는데 신문에 공고를 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업 첫해라 지원금의 규모가 적었고 많은 단체들이 요청할 때 분배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몇 년간 기초조사를 해놓은 상태여서 어떤 단체가 필요로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회의 공평성이 있어야 하므로 작게라도 신문에 공고를 내기로 하였다.

 

결재 과정에서 기존 조사된 단체만 선정해서 주는 방식을 고려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직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한 결과 반드시 신문공고는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는 직원 모두가 그 앞에만 가면 벌벌 떠는 기관장이 있던 시절이었다.

과원들은 어떻게 기관장의 결재를 받느냐고 걱정들을 많이 했다.

사실 나도 자신이 없기는 했다.

명분이나 타당성은 있지만 기관장 한 말씀에 법과 규칙이 바뀌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업의 지속성이나 나중에 발생할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깨질 땐 깨지더라도 가자 결심을 하였다.

관련서류를 챙기고 직원들과 함께 기관장실로 갔다.

사업의 성격과 앞으로 진행되었을 때 발생될 문제들을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문공고는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몇 번의 설전이 있은 후에 기관장의 결재가 떨어졌다.


"강과장은 웬 고집이 그리 센가?"라는 마지막 말씀과 함께.

그 날 저녁, 퇴근시간만 되면 약속이 있다면서 나가던 대리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는 몇 달 동안의 태업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그동안 제가 마음이 불편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습니다.

오늘 하시는 것을 보고 과장님은 역시 과장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리는 매일 야근을 하며 정말 열심히 일을 하였다.

어느 날, 문제가 터져서 이사님과 함께 외무부에 들어갔다 온 후 또 툴툴거렸다.

 

"과장님, 다시는 외무부 안 들어 갈랍니다. 저보고 부장님 오셨느냐고 하는데 창피해서요."

그러나 내가 해외발령이 나서 과를 떠날 시점에는 대리가 모든 일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You don't have worry about eyestrain from looking on the brighter side of life.

 인생의 밝은 면을 바라봄으로써 오는 눈의 피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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