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1978년도에는 계열별 입학을 하고 3학년이 되어서야 전공을 결정했다. 전공은 성적과는 관계없이 원하는 대로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대신 부전공이 필수였다. 그래서 인문사회계열 입학생 520명중에 영문과 졸업생이 290명이 넘었다. 당시 철학과, 기독교학과에는
전공생이 각각 1명씩 있었다. 영문대학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시절이었다.
매년 대학입시가 최대의 핫 이슈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그러한 교육에 대한 열성이 짧은 시간에 오늘날과 같은 경제기적(?)의 바탕이 되었다는 이론도 성행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 대학에는 가야한다는 것이 전 국민의 생각일 것이다. 미리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한다는 다른 나라들의 제도에 대한 연구는
무용지물이다.
그것은 능력에 관계없이 사회가 제도적으로 학력위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판을 해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초인들은 소수이다.
나의 전공편력은 화려하다(?). 대학 때 영어영문학 전공, 정치외교학 부전공, 석사
국제경영학, 박사과정은 정치학. 동일대학을 나왔어도 학부 전공이 틀리면 교수로 뽑히기도 어렵다는 우리나라다. 나의 다양한 전공경력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3시절 이유 없는
태만으로 성적이 떨어진 후 여자대학을 선택했고 법대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수석 할 욕심이 아니라면 그만두라고 말리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으로 인해
인문사회계열로 진학했다. 순전히 성적순 선택이었던 셈이다.
대학입학 후 관심이 많았던 사회학과를 지원하려다가 졸업후의 진로도
고려하여 영문학과를 선택했다. 부전공을 사회학으로 하다가 중간에 정치외교학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8년이 지난 뒤
대학원을 가면서 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국제경영학을 선택했었다. 그것도 면접시 학원장님의 권유로 공공정책학으로 바꾸었다가 입학 후 다시
원상복귀(?) 시켰다.
그리고 다시 8년의 세월이 지난 후 이번에는 정치학을 선택했다. 박사과정에 지원할 당시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주기에는 정치학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주제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지원 당시 앞으로 평생 정치를 하면서 살 것 같았던(?)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겠다는 생각도 컸다.
어찌하였건
다양한 전공을 통해서 다양한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삶이란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어울리는
과정이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 시절 흥미검사 결과에서 항상 90% 이상이 정치에 치우쳐 있었었다. 그 어린 시절의 관심이
평생을 지속하면서 결국 마흔 살을 넘기고 최종 전공을 결정하는데 바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이 과정을 마친다고 하여
끝일까? 또 다른 전공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We experience God's strength in the strain of our struggle.
우리는 힘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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