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소요회의 기쁨

평화 강명옥 2001. 12. 2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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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대학을 졸업하였으니 올해 말이면 꼭 졸업한지 20년이 된다.
그 때부터 만나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을 졸업 후에도 매달 한번 씩 보고 있다.
대학 입학 때부터 계산하면 24년을 만나온 셈이다.

계열별 입학이었고 원하는 대로 과를 지망하던 때여서 과동기가 290여명이 된다.
학교 다닐 때에는 이름순서대로 반이 넷 또는 다섯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대표가 아니라 반대표가 있었다.

워낙 수가 많다보니 같은 반이었든지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잘 모른다.
졸업 후 사회에서 가끔씩 동기 누군가에 대해 물어보면 집에 와서 졸업앨범을 확인한 후에라야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세대의 서글픔이라면 서글픔이고 특성이라면 특성이라 하겠다.

그러다 보니 재학 시절부터 몇몇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것은 졸업하고도 마찬가지여서 10년이 넘도록 동기 모임이 없었다.

8년 전에 기 간사를 맡으면서 동기들을 수소문한 결과 150여명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주소록을 작성하고 영문학과 동창회의 행사를 알려왔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두 번 기 모임을 하였는데 30명 내외정도 참석하는데 그쳤다.
제대로 모이려면 아직 시기가 안된 것 같다.

학교 때 가까웠던 친구들 몇이서 졸업 후에도 매달 한번씩 꾸준히 만나왔다.
세월이 가면서 각자 가까운 친구들이 하나 둘씩 같이 만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24명이 되었다.
이름도 '이영회'라고 오랫동안 불러왔으나 기모임을 계기로 '소요회'로 바꾸었다.
인생을 생각하며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살자는 의미에서였다.

우리의 만남은 사랑방 만남과 같다.
편안하게 살아온 이야기, 힘든 이야기 그리고 좋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매달 보는 우리들은 서로 나이 들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사고방식이나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이나 어찌 그리 변함들이 없는지...
다만 이야기하는 주제가 세월이 가면서 바뀌었다.
남편 이야기에서 아이들 이야기로 그리고 나이 먹은 변화에 대하여.
드디어 지난번에는 사위 며느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 안 있어 손자 손녀 이야기가 나올 듯 싶다.
시간 형편이 되는 대로 편안하게 모이다 보니 많을 때는 15-16명, 적을 때는 8-9명이 모인다.

매년 12월 송년회는 조금 거창(?)하게 하였는데 이번에는 산본에 사는 친구의 안내로 어느 화가가 운영하는 아뜨리에를 방문키로 했다.
완전히 시골집이라는데 방이 좁아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한다.
언제 봐도 언제 목소리를 들어도 좋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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