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농활

평화 강명옥 2001. 12. 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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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농촌봉사활동이었다.
당시는 방학이면 대대적인 농활이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대학 입학 후 계속 맡고 있던 과외 팀이 4-5개였기 때문에 방학기간에 10일을 뺄 수가 없었다.

3학년 봄에 전국 대학생 회장들이 이대에 모여 회의하던 날 저녁 급습을 당하고 난 후 휴교령이 내렸고 과외가 금지되었다.
그래서 4학년 여름 방학에는 자유롭게 농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간 곳은 강원도 산골이었다.
4학년이 교장, 3학년이 교감, 1학년이 선생이 되는 학교체제를 가지고 시작하였다.
낮에는 농사 돕기 오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난생 처음 고추밭과 조밭을 매봤고 감자를 캐봤다.
그러나 우리가 일한 밭은 마을 사람들이 다시 손을 봐야 했다.
피를 잘 구별하지 못했고 우리가 캔 감자밭에는 아직도 감자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며칠 지나자 마을 어른들이 회의를 하더니 요청을 하였다.
농사일은 그만 두고 차라리 아이들이나 가르쳐 달라고...
그러지 않아도 단 몇 시간 농사 일(?)에 허리 팔 다리가 쑤셔 고생들을 하던 차였다.

밤이면 찐 감자, 반찬들을 갖다 주었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우리들을 아주 잘 따랐다.
뭔가 일이 있어 한 학생을 꾸짖었는데 우는 바람에 무척 놀랐다.
알고 보니 교장을 맡고 있던 나를 아이들이 다 무서워했단다.(?)

읍내까지 하루 한번 버스가 다니는 곳.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과 산밖에 보이지 않던 곳.
이장 댁을 가려면 30분 이상을 걸어 한참 산을 올라가야 했던 곳.

열흘이 끝나 돌아오는 우리를 배웅한다고 읍내까지 나왔던 어른들과 아이들.
아이들은 따랐던 선생님들과 계속 연락을 했고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렇게 연결된 그 마을에는 그 후에도 몇 년 계속 봉사를 갔었다고 한다.

농활은 우리 근대사의 사연 많던 한 장면이다.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파랗던 하늘과 사방으로 둘러 싸여 있던 산들과 소박한 마음들이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으로 떠오른다.

 

 

Fear hinders faith, but trust kindles confidence. 두려움은 믿음을 방해하지만 신뢰는 확신을 지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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