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사장의 딸

평화 강명옥 2002. 2. 1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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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는 회장님으로 불리신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작은 건설회사 사장님이셨다. 그 이후 부도, 실패가 거듭되면서 아버지가 손대신 업종도 꽤 다양했다.

아직도 다섯 살 때 살던 주택을 팔고 단칸 셋방으로 이사하던 날이 기억난다. 같은 동네에서 이사를 하였는데 나도 무엇인가 짐을 들고 날랐던 생각이 또렷하다.

중학교 진학했을 무렵까지도 아버지는 친구 분들의 자본으로 계속 사업을 시도하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방안 가득 어른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아버지께 투자를 했다가 돈을 잃은 빚쟁이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방을 대라는 그들의 요구에 무척 시달리셨다.

어떤 날은 학교까지 빚쟁이가 찾아왔다. 우리 집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딸이 공부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물어 물어 찾아왔단다.

빚쟁이들이 우리 집으로 출근하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오후. 빚쟁이 중 아버지 친구 부인이 아버지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식으로서 그것을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의 입에서 나간 소리. 기본 예의를 지키라.  이득을 남기고 싶어 투자한 것 아닌가. 우리 아버지는 실패하고 싶어 실패했는가.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할 말 안 할말을 가려해라.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나의 항의에 거의 아무소리 못하고 아주머니는 떠났다. 그리고는 다음에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남자친척들을 대동하고 몇 번 더 나타났다. 나의 따지는 말에 심장병이 걸렸다나 그로 인해 어머니가 곤욕을 치루셨다. 그러나 이후로는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거듭된 부도에 질리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되풀이해서 말씀해오셨다. 절대 사업은 하지 마라, 사업하는 사람은 사위로도 안된다. 그 영향으로 동생들은 대기업의 차장, 과장으로 일하고 산다.
중간에 사업에 대한 욕심들을 냈지만 어머니의 강경한 반대로 탈출에 대한 꿈만 꾸고 있다.

아버지는 지금 80 중반에 접어들고 계시지만 아직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갖고 계신다. 아니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해야 할까...부지런함, 성실함, 깔끔함 어떤 좋은 성품도 사업의 실패를 만회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 IMF 때 많은 사업체들이 무너졌고 많은 가정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자살까지 하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무척 아팠었다. 오죽했으랴...

연쇄부도로 집에 빚쟁이들이 몰려들었던 무렵 초등학생들이었던 동생들은 아직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고 한다. 심리적으로 너무 큰 충격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은 더 험악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평생을 사장의 딸로 살아온 나는 부도 덕분에 물질에 대한 훈련과 아울러 성품에 대한 훈련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불같이 급한 성격이 다툼이 없는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바뀌었으니.

음식도 제대로 할 줄 모른 채 결혼했던 수줍음 많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많은 일을 하셔야했다. 지금은 다 꿈결처럼 지나간 일이지만 어머니는 가끔 내게 말씀하신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없다가도 네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이 있어왔다.'고.

가끔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필요한 만큼만 허락하신 물질과 환경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으로 제 성격을 다듬으신 그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여러 가지 형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힘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 합니다.'

Welcome each day as a gift from God.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선물로 기쁘게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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