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장을 볼 때 한꺼번에 사기 편한 집 근처 대형슈퍼를 이용한다. 그러나 걸어서 집에 오는 동안 (10분 거리라 운동 삼아 걸어다닌다)
도로에 죽 앉아 있는 노점상들을 지나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살 때가 많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물건이라야
집에서 기른 듯한 콩나물 한 통, 깻잎, 호박 열 두어 개, 오이 열 두어 개, 파 몇 단, 밭에서 캔 듯한 시금치, 은행 알 봉다리, 잣
봉다리 등...
저것을 다 팔아야 얼마나 남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 가슴 한 켠에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연세에 저렇게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할머니들의 저력이 우리를 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IMF 이후 사회에서 한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노숙자로 떠도는 장정들이 많은 작금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 생각이 든다.
국가에서 보장하는 노후 복지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나이
들어 더우나 추우나 길에 앉아 물건을 파는 노인들이 보이지 않겠지만...대대로 각 가정이 담당해온 노인복지가 차차 국가의 몫으로 넘겨지는
과정이니.
사실 도로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점상들의 좌판 덕에 도로가 너무 좁아 행인의 입장에서는 참 불편하다. 그러나 '살기 위해'
나선 할머니들의 얼굴을 보면 아무리 법이 앞서고 행정이 우선이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가끔 단속이 나와 치우라 말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보게 되지만 다음날 여전히 장사들을 하는 것을 보면 행정도 어쩔 수 없어 형식적인 단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
장을 보고 오다가 길에서 한 할머니에게 새우봉지 하나를 샀다. 2천 원이라고 하였는데 손에 제법 큰 장바구니를 들은 터라 주머니에서 3천 원이
딸려 나왔다.
"할머니에게 천 원 더 드리고 싶은가 봐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웃었더니 할머니는 정색을 하시면서 진지하게 대답을
하셨다.
"안되지요. 모르고 받았어도 그건 절대로 안되지요."
손까지 내두르면서 마치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그 말씀에서 정직하게
삶을 사는 모습이 그대로 읽혀졌다.
나라의 일꾼들이라는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받아 대가성으로 일을 봐주었다는 일로 온 나라가
들썩들썩한 요즘 현실에서 이 나라를 유지하고 버텨 나가게 하는 것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시민들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 Jesus |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누가복음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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