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회사동기 모임 20주년

평화 강명옥 2002. 2. 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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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82회' 송년 모임을 가졌다.
20년 전에 비해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세월의 연륜이 배어 있긴 하지만 사회초년병 당시 보았던 모습들 그대로였다.
"우리들이 이렇게 만난 지 벌써 20년이라니.."
다들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82회'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딘 동기들의 모임이다.
1982년도 H그룹은 늘 몇 명 정도만 배정하던 H중공업 서울사무소에 유례 없이 십 수명에 달하는 신입직원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8년을 근무하고 퇴사할 때까지 그렇게 다수의 인원을 배정하는 일은 없었다.

1982년도에 입사한 동기들 모임이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 '82회'다.
그 해 그룹에서 처음 뽑은 대졸 여자직원은 나를 포함해 2명이 배정되었고 모두 모이니 12명이었다.
퇴근 무렵 회의실에서 처음 동기회를 하였는데 그것이 사무실에 파란을 일으켰었다.
'저 신입직원들이 떼거리로 모여서 무엇을 하려는 거냐'는 이야기로 말이 많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우리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늘 조심스러웠다.

동기모임은 한 달에 한번씩 이루어졌고 1년이 지나자 하나 둘 결혼들을 하기 시작해서 우리는 더 바빠지기 시작했었다.
우리들이 모이면 각 부서의 온갖 인물평과 업무 이야기, 거래처 이야기, 출장 이야기, 그룹내 돌아가는 사정들이 훤히 나왔다.
중간에 그룹 내 인사 이동이 있어서 새로 들어온 동기들이 합류하였고 총 16명이 되었다.

입사 후 3-4년이 지나자 하나 둘 전직들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공부를 하여 교수가 된 사람, 경쟁사인 삼성으로 이직한 사람, 전혀 다른 업종인 증권사로 진로를 바꾼 사람, 학원을 차린 사람, 학교선생님이 된 사람 등등...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 그룹에 남아 있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이번에 근속 20주년 기념으로 무슨 상들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직장에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세월이 가면서 서로들 바빠져서 한 달에 한번 모임이 서너 달에 한번 모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2-3년에 한번 씩 전 가족동반 모임을 계속해온 덕에 가족들이 서로 잘 안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같이 만나는 것을 좋아하더니 이제는 다들 커서 가족모임이 부부모임으로 바뀌었다.

동창들을 만나면 그 옛날 선생님들 이야기를 하듯이 우리도 일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특이한 상사들의 별명을 불러가면서.

이번에도 밤새워 가며 천장까지 차던 입찰서류를 만들던 부서의 이야기가 나오자 한마디들을 한다.
"그 시절 하도 밤새워 복사를 많이 해서 아직도 복사기라면 자신 있다고..."
"맞아 맞아 복사의 왕도 있었고 여왕도 있었지. 하하하..."

다들 성실한 가장들이자 사회인들이고 생활의 모범생들이다.
그래서 무던히도 아무 갈등 없이 담담하게 20년을 만나왔다.
사회 출발은 같이 하였지만 지금은 일하는 분야도 아주 다양해졌다.
그 다른 분야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크다.

이번에 우리 모임 20주년을 기념하여 H중공업 본사가 있는 울산을 부부동반으로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서울에서 근무했지만 뿌리는 울산이라고.
버스 한 대를 빌려 오며가며 밀린 이야기도 하고 그동안 있었던 추억도 다시 돌아볼 예정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모임은 언제라도 기쁨을 준다.
사회에서 처음 나갔을 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복이다.
그래서 내가 말많고 탈 많은 대기업에서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나 보다.

입사 시부터 1999년까지 18년 간 만년 총무로 독재(?)를 해왔던 나는 요즘 아주 가볍게 모임에 나간다.
그냥 회원으로서.
나와 같이 유이한 여자 회원인 친구가 회장을 맡아 하다가 다시 총무를 맡아 수고하고 있는 덕이다.
신임총무의 남편은 늘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여 다른 회원보다 출석률이 높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자주 빠졌던 나의 남편도 20주년 기념 모임에는 같이 갈 예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일하고 만나고 하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이 흘러 가는 것이리라....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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