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고등학교 2학년 봄 어느 날이었다.
상담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국어선생님께서 보자고 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상담실을
찾은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는 한동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 무렵 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1학년 때 새로 수학선생님이 부임하였다.
붙임성이 별로 없는 선생님이었고
설명력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선생님 나름대로는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툭툭 치면서 장난을 잘 걸었다.
아이들은 단번에 '꺼벙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꺼벙이'선생님은 2학년 담임을 맡았고 2학년 수학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학기
도중에 같은 학교 재단의 중학교로 전임발령이 났다.
학생 중 누군가가 교장선생님에게 실력이 안 된다고 바꿔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상담실 선생님은 '꺼벙이'선생님이 떠나기 전 자기를 그렇게 만든 학생이 나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자신의 장난과 농담을 받지 않는 '유일한 반장'이었다고.
그러면서 나를 원망하면서 떠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담실 선생님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꺼벙이'선생님의 담임 반 반장이 담임을 싫어하여 계속 상담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담실 선생님은 그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고 했다.
그것은 상담실 책임자로서 학생이 믿고 상담한 내용을 발설하는 것이라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 일은 그 때 이후로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이야기를 듣고서도 나는 '꺼벙이' 선생님을 찾아가 내가 아니라는 해명을 하지 못했다.
다만 참
억울하구나. 이렇게 억울한 일도 생기는구나. 생각만 했다.
'사람 마음이 버선목이라면 뒤집어나 보여주지'라는 말이 가끔
생각난다.
내 성격과 태도가 보통 상냥한 여학생들과 많이 달랐던 것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유달리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어온 내가 선생님들은 조금 어려우셨던 것 같았다.
중학교시절부터 오랜 기간 나의 성장을 지켜보셨던 한 선생님은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제자가 아니라 친구 같다.'라고...
농담할 줄 모르고 늘 딱딱하고...그래서
선생님이 장난을 걸다가 무안하셨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그렇게 어린 사람을 볼 줄 몰랐는가?
어디를 봐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배우는 학생 입장으로 선생님을 쫓아낼 수 있다고 보였는가?
지금도 그 오해가 억울하다.
왜 상담실 선생님은 그
때 내게 사실을 이야기 하셨을까?
이미 끝난 일이고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자신은 밝힐 수 없으니 내가
'꺼벙이'선생님에게 쫓아가서 해명하라는 것이었을까?
그 일로 내가 절실히 깨달아 안 것은 이 세상에 정말 억울한 일들이 많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만이 내 마음을 안다'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지 않을까?
정말 우리 인생의 모든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인생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The righteous Judge gives discernment to those who ask Him. | 공의로운 재판장인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분별력을 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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