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오해

평화 강명옥 2002. 2. 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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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고등학교 2학년 봄 어느 날이었다.
상담실을 담당하고 계시던 국어선생님께서 보자고 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상담실을 찾은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는 한동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딱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그 무렵 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1학년 때 새로 수학선생님이 부임하였다.
붙임성이 별로 없는 선생님이었고 설명력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선생님 나름대로는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툭툭 치면서 장난을 잘 걸었다.
아이들은 단번에 '꺼벙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꺼벙이'선생님은 2학년 담임을 맡았고 2학년 수학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학기 도중에 같은 학교 재단의 중학교로 전임발령이 났다.
학생 중 누군가가 교장선생님에게 실력이 안 된다고 바꿔달라고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상담실 선생님은 '꺼벙이'선생님이 떠나기 전 자기를 그렇게 만든 학생이 나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자신의 장난과 농담을 받지 않는 '유일한 반장'이었다고.
그러면서 나를 원망하면서 떠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담실 선생님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꺼벙이'선생님의 담임 반 반장이 담임을 싫어하여 계속 상담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담실 선생님은 그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고 했다.
그것은 상담실 책임자로서 학생이 믿고 상담한 내용을 발설하는 것이라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 일은 그 때 이후로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이야기를 듣고서도 나는 '꺼벙이' 선생님을 찾아가 내가 아니라는 해명을 하지 못했다.
다만 참 억울하구나. 이렇게 억울한 일도 생기는구나. 생각만 했다.
'사람 마음이 버선목이라면 뒤집어나 보여주지'라는 말이 가끔 생각난다.

내 성격과 태도가 보통 상냥한 여학생들과 많이 달랐던 것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유달리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어온 내가 선생님들은 조금 어려우셨던 것 같았다.
중학교시절부터 오랜 기간 나의 성장을 지켜보셨던 한 선생님은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제자가 아니라 친구 같다.'라고...

농담할 줄 모르고 늘 딱딱하고...그래서 선생님이 장난을 걸다가 무안하셨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른이 그렇게 어린 사람을 볼 줄 몰랐는가?
어디를 봐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배우는 학생 입장으로 선생님을 쫓아낼 수 있다고 보였는가?

지금도 그 오해가 억울하다.

왜 상담실 선생님은 그 때 내게 사실을 이야기 하셨을까?
이미 끝난 일이고 내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자신은 밝힐 수 없으니 내가 '꺼벙이'선생님에게 쫓아가서 해명하라는 것이었을까?

그 일로 내가 절실히 깨달아 안 것은 이 세상에 정말 억울한 일들이 많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만이 내 마음을 안다'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지 않을까?
정말 우리 인생의 모든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정말 인생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The righteous Judge gives discernment to those who ask Him. 공의로운 재판장인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분별력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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