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선생님(1)

평화 강명옥 2002. 3. 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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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전공에 대한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였었다.
그러나 절대 선생님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것은 선생님이 된다면 가르치는 아이들의 영혼까지 책임지고 그 인생에 대해 모든 지도를 해야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엄청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졸업 후 일반회사에 다니는 직장생활을 선택했었고 다시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고 있지만 정부산하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었다.

결혼 후 나이 40이 넘어가면서 내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당연히 아이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영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지만 주위의 걱정과 염려가 커져서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 늦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기 전에 인간적인 노력을 하자는 결심으로 직장 일을
접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내 이력서의 빈 날들은 일년이 넘게 잘 보냈다.
병원 다니는 것을 주 업으로 하면서 피아노도 배우고 운전도 배우고 골프 연습도 하고 겨울이면
스키도 타면서 한가롭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 스스로의 질문이었는지 하나님의 질문이었는지 분간이 잘 안 간다)

'네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느냐?'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은 오랫동안 해오고 봉사단 일을 하며 간혹 짧은 강의는 했었지만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기에는 나의 공부가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제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답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후배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4학년 때 농촌봉사활동을 같이 갔었던 당시 1학년 후배들 중의 한 후배였다.
졸업 후 한 두 번 만났을까 통 연락이 없이 지내다가 다른 후배로부터 연락처를 알았다며 연락이
와서 15년 만에 만나 점심을 같이 했었다.

졸업 후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후배는 강사 할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다.
'세계의 풍습과 에티켓'이란 교양과목을 개설했는데 그 대학 초유의 학생들이 몰려서 수강생들이
500명이 넘었고 개강을 얼마 앞두고 긴급히 강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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