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별명

평화 강명옥 2002. 2. 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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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튀는 성격이 아니라 별명이 붙여지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중학교 때 들은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엄마 같다고 '엄마'.
반장으로 무섭게 한다고 '호랑이'.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였고 내가 했던 행동들에 웃음이 난다.
그렇지만 당시는 참 진지하게 공과 사를 구별하고 살았다.
반장으로 아이들 앞에 섰을 때는 선생님보다 더 무서운 인물(?)로,
방과후에 아이들과 놀 때는 장난기 많은 친구로 살았다.

요즘은 아이들이 만만히 다룰 수 있는 성격 좋은 아이가 반장으로 뽑힌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한 장점이 있어 인기가 좋던가.
공부만 잘해 가지고는 범생이라고 무시당한다고 들었다.
내가 자라던 1970년대는 시대상황이 그래서였던가 반장도 상당히 권위적이었다.
거의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뽑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질책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반 전체에 대해 벌을 주었다.
가끔씩 쉬는 시간에 전체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두손드는 벌을 세웠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한사람씩 나오라고 해서 손바닥을 때렸다.
맞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모두 나와 맞고 들어가서는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합창대회가 열렸을 때에는 모든 반이 남아서 열심히 연습들을 하였다.
아이들은 연습하며 가자는 소리를 못하다가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일제히 '집에 가요'를 외쳤다.
'그래 이제 되었다. 그만 가라'는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져서도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을 보신 선생님은 그제서야 웃으시면서 '반장, 이제 보내주지'라고 하셨고
'오늘 연습 그만 한다'라는 내 말을 듣고서야 아이들은 움직였다.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면 고발당하는 요즘 세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반장이 그랬다가는 당장 몰매 맞을 일인데...
그렇게 야단맞고 매맞고 하면서도 아이들은 2학기 때 90%가 넘는 지지율로 나를 반장으로 다시 뽑았으니...

3학년으로 올라간 어느 날 한 친구가 농담처럼 이야기 한 것이 있다.
2학년 말 나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 눈앞이 캄캄했었단다.
앞으로 1년을 어떻게 살아가나 너무 걱정이 되었었다고.
그런데 지내고 보니 기우였음을 알았다고.
아이들이 혼날 때(?)에는 다 타당한 이유가 있고 반장 아닌 친구로는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

선생님도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해 교실이 무너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가 참 순진한 세대였구나.
요즘 저렇게 기가 넘치는 아이들이 만드는 미래는 그 기가 발산되어 확장되는 시대가 될까,
아니면 어느 권위도 인정 않는 무권위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어찌하였건 장차 올 미래를 책임지게 될 우리 후세대를 위한 기도가 많이 필요한 때이다.

기리시마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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