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지키지 못한 약속들

평화 강명옥 2002. 3. 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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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대학원은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이다.
이번에 입학식과 개강을 앞두고 학생들이 미리 입사하여 며칠 간의 프로그램을 가지는데 그
중 선배와의 대화 시간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학교 졸업 후 사회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 받았는데 처음에는 망설였다.
요청 날짜가 수요일이라 수요예배를 빠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는 새싹들과의 만남이라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연락을 하게 되었다.
수요일에 남편과 부부동반을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국의 건국기념일 리셉션과 T국 대사 관저에서 만찬이 있어 빠질 수 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일이 우선인가 남편의 일이 우선인가 고민하다가 부탁을 한 학생에게 전화를 하였다.
'할 수 없지요. 우리끼리 자체 시간을 가져도 좋구요 '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참 미안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약속 한 것을 깬 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키지 못한 또 하나의 약속.
아들과 딸이 일주일 차로 있는 딸과 나의 생일을 기념하여 저녁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약속이 있는 날 방학이 끝 나가는 조카들과 서울대공원에 간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오전에 출발해서 오후에 돌아오면 저녁 약속시간에 충분히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시간 반 동안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동물들을 찾아다니며 보는 동안 지쳐버렸다.
친정까지 갔다가 집에 오니 차가 밀려 거의 세시간을 운전을 하게 되었고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온 몸에 열이 나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간신히 집에 들어와 딸에게 전화를 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하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 때가 저녁 7시경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음날 오후 1시였다.
저녁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들끼리 오붓하게 시간을 잘 보냈다고.
그리고 내 생일선물로 남방을 샀는데 다음에 주겠다고 한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지난달에는 친구들과의 등산모임도 아침에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가지 못할 뻔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한 후배가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할 뻔했다.

나이 탓인지, 나빠진 건강 탓인지.
생활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꽃쥐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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