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은 차 긁어버린 것으로 대신...

결혼전에 생일을 집에서는 음력으로, 교회, 친구들, 또는 회사에서는 양력으로 그렇게 두 번 씩 치렀다.
결혼 후에도 달라진 것 없이 음력으로 하기도 하고 양력으로 하기도 했다. 일정 봐서...
그러나 교회에서는 양력으로 챙기고 있고 아들딸들도 양력으로 챙겨준다.

지난 토요일이 나의 양력생일이었다.
그 며칠 전 아들딸들과 미리 저녁약속을 했었으나 몸이 안 좋아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 교회의 고집사님이 일산에 변호사사무실을 여는 개소예배를 본다고 해서 아들과
그 사무실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아들은 몇 년 째 일산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아들은 딸과 함께 골랐다는 선물과 장미꽃다발을 가져왔다.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산뜻하게 입으라고 골랐다는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하얀 남방이었다.
아침에는 딸이 메일로 생일축하 카드를 보내고 저녁에는 제주에 있는 아들에게서 축하전화가 왔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남편과는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약속을 했었다.
새로 생긴 파이낸스빌딩 지하의 인도음식점이 괜찮다고 해서 동의를 했던 터였다.
생일이면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고 장미를 선물하고 받고 그렇게 지내왔던 것처럼.

그런데 그만 내가 급히 사무실 개소 예배시간을 지킨다고 서두르다가 지하주차장에서 커다란
네모 기둥에 차의 옆을 긁어 버리는 실수를 했다.
운전을 시작한 후 열흘도 안되어서 차 오른편을 길게 그어버려서 어찌할까 생각만 하고 있던 차인데
이번에는 왼쪽을 까만 바탕에 노랗고 하얀 추상화를 그린 듯이 만들어버렸다.

남편이 보기 전에 미리 전화로 자백했다. "오늘이 생일인데 선물했다고 생각하세요..."
나중에 차를 본 남편 왈, "비싸긴 비싼 선물이구만..."

그리고 저녁식사는 밖에서 먹으면 한창 열심히 하고 있는 다이어트에 지장이 있으므로 집에서
먹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차려진 생일상 : 콩나물, 시금치나물, 봄동나물, 상추, 파나물, 김, 미역국.

대신 생일 저녁 밤늦게까지 좋아하며 웃는 남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