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호강

평화 강명옥 2002. 6. 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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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찧고 난후 절대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소리에 거의 강박적으로 노력을 하였다. 혹 잘못되어 손톱이 곪아 빠지는 불상사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머리도 감지 못하고 세수도 못하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일주일이 흘렀다. 직원들이 이 일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병원 다니는 고통보다는 가려운 것이 더 낫다는 굳센 결심으로 버텼다. 그러나 드디어 참을성의 한계선 상에 다다르게 된 날 밤 남편에게 부탁했다.

 

"자기야, 나 머리 좀 감겨줘요."
"응???.....에이 어떻게 감겨...."

떨떠름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은 영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좀 참아볼까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졸랐다.

 

"머리 감겨줘!!!"

꺼먼 피멍이 든 손가락을 내밀면서 말하는 나의 압력에 굴하여 남편이 드디어 해줄 마음을먹었다. 나는 욕실에서 어설픈 모습으로 머리를 내밀고 남편은 더 어설픈 모습으로 샤워기로 머리를 감겨주었다.


"나 참..나 참..."을 연발하면서.

그렇게 해서 평소 도저히 누려볼 수 없는 남편이 머리를 감겨주는 호강을 하였다.

'손톱 찧어볼만 하네'
물론 속으로 혼자한 말이다.

Be as gracious in receiving as you are in giving.
(은혜롭게 베풀고 은혜롭게 도움을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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