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1980년 봄, 서울역 광장에서(1)

평화 강명옥 2002. 7. 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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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동안 광화문 네거리로 모이고 또 모인 사람들을 보며 22년 전 서울역 광장이 기억났다.
모든 학교의 학생회와 교수들과 총장까지 함께 공식적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그 시절의 함성이...

1978년 입학하고 시위로 인해 가을에 있는 문리대 축제가 없었고 2학년 때에는 봄에 있는 학교축제가
없어졌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새벽에 공부하느라 도서관으로 가던 중에 10.26 저격사건이 있었고 모든 것이
혼돈으로 들어간 듯 했다.

그리고 맞은 3학년 봄.
민주화의 거센 물결은 학교에도 밀려왔다.
학도호국단이 아닌 학생회를 구성하기 위해 단과대별로 선거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어찌하다가 문리대 선거위원장이 되어 학생회장을 뽑는 일을 하게 되었다.
회장 자격은 4학년이었는데 졸업을 불과 1년 남겨둔 시점에서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각 과 대표들을 찾아 나섰고 설득을 해서 몇 명의 후보자들이 나왔고 바로 선거운동이
진행되었다.
각 후보자에 대하 벽보를 제작하고 대강당에서 몇 번의 합동연설회를 주관하고 투표함을 만들어
설치하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다들 무슨 힘들이 났는지 밤을 새워 일들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영문과 대표가 문리대 학생회장이 되었고 회장은 4학년들을 중심으로 각 부서의 부장들을
선정하면서 3학년이었던 내게 홍보부를 맡겼다.
홍보부장으로서 내가 처음 했던 사업이 자유게시판 설치였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쓰게 하자는 취지였는데 처음에는 하얗게 남아 있던 공간이 얼마
지나자 시국토론에서 교수에 대한 비판까지 온갖 글들이 올라갔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매일 행사가 되어버린 시위에 전 학교 학생들이 다 참여하게 되었다.
학생시위는 급기야 서울역 광장, 종로네거리로 확장되었다.
저녁에는 학교에서 밤을 새워가며 토론으로 지샜다.
당시 학생회 예산의 상당부분이 학생회관에서 밤을 새울 때 먹은 밥값으로 지출되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종로로 행진한 어느 날, 경찰이 시위대 양쪽에서 쳐들어왔다.
당시 옆에 있던 수학과 대표와 같이 종로 뒷골목으로 뛰었다.
그 친구는 집이 종로여서 종로의 골목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던 터였다.

God cares about our cares because he cares about us.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염려를 돌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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