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J교회 대학부(2)

평화 강명옥 2002. 8. 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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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교회 대학부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어떤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사회 현실을 모르고 산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어설프게라도 진실을 알고 난 후에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을 것이다‘

들을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선배의 그 말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는 날까지 하루도 마음이 편치 못했으며 늘 어떤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길이 더 옳은 길인가를 알면서도 포기했고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던 선배와 친구들
곁을 떠나 ‘배신자’가 되었다는 죄책감이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갔다.
이 사회의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말 그대로 공부를 계속하였다.

졸업 전 학교의 추천으로 H사에 서류를 내고 시험을 보던 날 아침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학생들의 시위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내가 ‘보통의 평범한 삶’을 선택했고 결과가 어찌하였던
그것은 내가 책임지는 나의 인생길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바쁜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나의 ‘죄의식’과
괴로움’은 적어져 갔다.
J교회 대학부를 떠난 후로 5년여의 세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니는 동안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던 J교회의 담임목사이신 P목사님에 대한
소식은 늘 신문지상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올해 4월 그 목사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무실을 옮기고 정식으로 청사를 공개하는 날이었다.

많은 민간단체의 몇 년에 걸친 투쟁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청
손님으로 민간단체의 원로인사들을 모셨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투쟁과 고생으로 일관한 P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원로들을 만나면서 24년 전
피했던 아니 도망치다시피 떠났던 그 때를 떠올렸다.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하는...
그러면서 문득 어쩌면 내가 이렇게 국가인권위원회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찌하였건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해보겠다고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젊은 시절에 나를 괴롭혔던
‘죄의식’을 갚기 위한
'속죄의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Be a grace-giver, not a faultfinder.
(흠잡는 사람보다 은혜 베푸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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