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1980년 봄, 서울역 광장에서(2)

평화 강명옥 2002. 8. 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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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서 밤을 지냈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들은 내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연락이 없자 교수님께 전화를 하셨고
교수님은 다음날 서울역 광장으로 나를 찾으러 나가셨었다고 했다.

그렇게 연일 민주화에 대한 시위가 계속되던 5월 17일 저녁 9시쯤에 전화가 한통 왔다.
그 날 학교에서 전국 대학 학생회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경찰에서
학교를 습격했고 회장들이 거의 다 잡혔는데 학생회 간부들에 대한 검거가
있을 것 같으니 피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옷 몇 벌을 챙겨가지고 집을 나섰고 이후 잠잠해질 때까지 지방에 있는
친구 집들을 전전했다.
학교 휴계령이 내리고 조용해졌을 때 집으로 돌아 왔다.
서울대는 단과대 간부들도 모조리 잡혀 들어갔는데 다른 학교들은 총회간부들
선까지 구속되었다.

긴 휴교가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 되었고 기존의 학생회 간부들은 전부 쫓겨났다.
당초 4학년들이 두 달간 학생회를 이끌다가 5월말에 선거를 통해 3학년들에게
일을 넘겨주겠다고 했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그리하여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수학과 대표 친구를 문리대 학생회장으로 밀고
총학생회장으로 나가겠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모처럼 학교 일을 맡지 않았던 4학년은 여유롭게 보냈고 대학생들의 과외금지
조치 덕분에 가고 싶었던 농촌봉사활동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 식이 진행되는 동안 대학생활 4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입학식 장면이 생각났다.
입학식에 조금 늦어서 대강당에 들어섰을 때에는 막 학도호군단장(학생회장)의
축하 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3년 뒤에는 저 자리에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선거위원장을 맡아 진행하면서...
그리고 학생회장들에 대한 검거가 2주일 늦게 되었더라면 졸업식장에 참석도
못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 인생의 갈림길이 그 2주로 인해 결정되었던 것이었다.


Tough times teach trust.
(힘든 때가 신뢰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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