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병원 복도에 누워보니...

평화 강명옥 2002. 8. 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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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을 시름시름 앓다가 병가를 내어 일주일을 쉬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아 입원을 하였다.
몸에 나타나는 증세를 좇아 초음파사진, x-ray 사진,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비롯한 검사를 두루두루 하였다.
위내시경이 그렇게 숨넘어가도록 괴로운 것인지, 대장내시경이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처음 알았다.

입원한 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왜 그리 잠이 쏟아지던지 정신없이 잤다.
의사선생님을 비롯 간호사선생님들(병원에 입원해 보면 저절로 선생님 소리가 나온다.
평생을 온갖 아픈 표정을 지은 사람들을 대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이 안 생길수가 없다)이
찾아올 때마다 자고 있는 상태였다.

담당 수간호사 선생님은 입원한지 사흘 만에야 비로소 환자인 내 얼굴을 처음 봤다고 했다.
입원실 옆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는 밤낮으로 자는 내가 먹는 약에 수면제가
있는 줄 알았다고...

결과는 빈혈, 식도염, 위염, 장에 생긴 혹....
이 혹이 2년 안에 틀림없이 암으로 된다는 말씀에 퇴원한 지 이틀 후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래서 수술 전날 속을 비우고 새벽 5시에 일어나 4시간동안 4리터짜리 약물을
들이키고 수십 번을 화장실을 드나들며 장을 비우는 작업을 하였다.

병원에 가는 길에 내내 구토증세를 보였는데 대장내시경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진통제를 맞았더니만 완전히 기절 직전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병원 복도 긴 의자에 염치불구하고 누워버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아이들이 울어대는 병원복도에서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붙잡고 누워 있노라니 참 사는 게 별거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나온 진단명은 ‘만성피로증후군’.
몸이 전반적으로 기능이 저하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그래서 속이
더 엉망이 된 것 같다.
건강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상태가 반복된다고 하는데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운동량을 늘여나가면 호전된다는 희망적인 말씀을 들었다.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요,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닌 줄은 알고 살고 있지만
그리도 튼튼하였던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듯싶다.

친구들과 늦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밤늦게 들어온 날,
남편이 기운 없이 누워있는 나를 너무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안아주며 한 이야기.
“자기야, 강해져야 해, 강해져야 한다구...”

암. 그래야지.
늘 하늘나라 갈 때 먼저가기도 싫고 남기도 싫다고 같이 가자고 한 사람은
나인데 이러다가 혼자 먼저 가기 십상이다.

3주 만에 출근을 하였더니 한걸음 뗄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땀이 나고 어지럽다.
내가 살아 할 일이 있고 해야만 할 소명이 있다면 건강도 주시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백인데...

When you are swept off your feet, land on your knees.
(역경이 몰려오면 무릎 꿇고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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