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접촉 결핍증은 어쩔 수 없다.

평화 강명옥 2002. 8. 2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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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에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를 갔다. 작년에 구입한 양복에 문제가 생겨 수선을 맡겼더니만 다른 것으로 교환해주겠다고 해서였다.

몇 번 드라이크리닝을 하고 나서 상의 표면이 볼록볼록 튀어나왔고 세탁소에 이야기를 했더니 세탁의 문제가 아니라 양복 자체가 재단이 잘못 되었다고 했다. 어찌되었건 일년을 입고 나서 새 양복으로 바꿔 입게 되었으니 그도 좋은 일이라 여기며 갔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리자마자 남편의 손을 잡았다.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남편은 날씨가 무더워지는여름이면 늘 초긴장(?) 상태가 된다. 내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손잡고 싶어하고 옆에 딱 붙어 있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내가 열이 많아 손이 뜨거운 탓에 남편이 못 견뎌 할 때가 많다.

빵빵한 에어컨으로 추울 만큼 시원한 백화점 안인데도 남편은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부탁한다.

"자기야..손 좀 놓고 가면 안 될까?"
"안돼. 난 젊어서 이런 것 해보지 못해서 밀린 것 다하려면 어림도 없어."

마치 손을 놓으면 큰 일 난다는 듯이 잡은 손을 더 꽉 잡는 나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를 하는 남편...아주 가끔 남편의 의지가 아주 강할 때는 남편의 새끼손가락이라도 잡고 간다.

이 장면은 남편과 내가 외출할 때면 늘 반복되는 현상이다. 한창 좋은 청춘 시절에 남들 데이트하는 것만 보고 지낸 내가 결혼하고 나서 손잡고 다니는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아, 얼마나 억울했던지. 그 좋은 젊은 시절에 그 좋은 것을 못해보고...

외출하면 꼭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종의 강박관념같이 생긴 것에 대해 스스로 진단해보면 이는 틀림없는 접촉결핍증이다.

어려서는 점잖은 부모님 밑에서 애교 없는 딸로 자랐고,
학생 시절에는 무뚝뚝한 성격으로 인해 친구들과 손잡고 다니는 법이 없이 지냈고,
청춘 시절에는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았으므로 인하여...

혹시 백화점에서 아니면 거리에서 중년의 부부가 손잡는 것에 대해 위와 비슷한 내용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거나 아니면 아내가 남편의 새끼손가락을 꽉 붙들고 가는 커플이 있다면 아는 척을 하셔도 좋다.

거의 틀림없이 우리 부부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Faith in Christ enables us to live above our circumstances not under them!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를 환경에 속박 당하지 않고 환경을 초월하여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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