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효자 영중이

평화 강명옥 2002. 8. 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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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직후 남편과 나는 우리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우리의 아이를 생각하며 이름부터 지었었다. 집안의 돌림자가 ‘영’이라 온갖 글자를 대입시켜 보다가 정한 것이 ‘영중’이었다.

가끔 우리는 영중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서로의 장점을 닮은 아이였으면 했고 상당히 괜찮은 녀석일 것이라고 미리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모른다. 바쁘게 보내는 날들이 지나가고 주위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하는데도 우리 부부는 태연했다.  때가 되면 어련히 하나님이 안주시겠냐 하는 것이 우리가 철썩 같이 믿는 구석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총선에 출마를 결정하고 나서는 가끔 걱정을 했다. 우리의 영중이가 그 기간 중에 생기면 서로 힘들 텐데 어쩌나 하면서...그러다가 선거가 닥쳤고 이 세상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영중이가 참으로 효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모든 어수선한 일들이 지나가고 나서도 영중이는 영 얼굴을 보여줄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올해 초, 나는 영중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렇게 이름만 있다가 잊혀져 가고 있는 영중이에 대한 생각이 났다. 어린이날이었던 주일날 아침 어린이들에게 교회 뜨락에 심을 꽃모종들을 나눠주게 되었던 것이다.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아침 일찍들 나오셔서 어린이 한명 한명에게 사랑을 표현하면서 미리 준비한 앙증맞은 화분들을 주었다.

갑자기 내가 할머니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던 그 날 아침 몇 년 동안 우리 부부가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 해왔던 잊혀져가는 이름이 생각이 났다.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을 영중이로 보고 살라는 것이었을까? 결혼 전 한창 어머니에게 결혼하라는 시달림을 받고 지내던 어느 날의 나의 대답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남기는 것이 자식뿐이라는 어머니 말씀에 내가 낳지 않아도 이 세상에 돌봐줄 아이들이 많다고 했던 나의 대답이....


God is more interested in our motives than methods.
하나님은 우리의 방법보다 우리의 동기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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