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선생님(2)

평화 강명옥 2002. 8. 2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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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보고 연락을 하겠다고 대답을 하였는데 후배가 나보고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였다.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렵겠다고 답을 하였는데 후배는 그동안 내가 국제협력 관련 일을
한 것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면 좋겠다고 권유하였다.
그래서 며칠 생각해보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후배와 학과장과 같이 만나게 되었다.

학과장은 나의 이력서와 해온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무척 반가와 하며 꼭 강의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였다.
처음에 후배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후배의 말을 듣고는 어떻게
거절을 할까 고민하면서 만나는 자리에 나왔었다면서...
그렇게 해서 일주일에 여섯시간 두 클래스 220명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침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택시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점심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1시간, 2시간 짜리 강의를 끝내면 저녁시간.
강사들끼리 저녁을 먹고 학교 근처 여관에서 짧은 잠을 자고 아침에 각각 2시간, 1시간 강의를 끝내고
나서 또 간단히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서울에 돌아오면 저녁시간.
학부강의라 세시간으로 연속 강의가 안 된다고 하여 이틀에 나눠 강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서 시작한 강사 생활은 아주 재미있었다.
커리큘럼은 강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었기 때문에 나의 생각대로 강의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 학생들이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데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피며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었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거의 모두 출석을 하였으며 내가 요구하는 발표, 시험, 보고서 등을 아주
충실하게 해냈다.
학생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가운데 어느 새 한 학기를 마치게 되었다.

마지막 평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모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다 A를 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평가 기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부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방학 기간 동안 한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신은 내 강의가 좋아서 다른 과목에 비해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어떻게 C를 줄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에게 적용되었던 점수를 설명해주었더니 끝에는 죄송하다면서 끊었다.
선생님이 학점을 주면 불만이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던 우리 세대와는 너무도 다른 면을 보며
새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남편의 총선 준비로 인해 나의 짧은 강사 경력은 그것으로 마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절대 부담감 때문에 선생님은 하지 않겠다는 나의 오랜 고집은 꺾였다.
또한 '네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했던 대답에서
'살아오며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조금은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바뀌었던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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