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춤에 관한 기억

평화 강명옥 2002. 8. 21. 19:18
반응형
SMALL

에어로빅을 시작한지 이제 며칠.

안 쓰던 몸을 사방으로 뛰고 흔들어대고 한 결과 온 몸이 쑤신다.

수요 예배가 끝나고 4월부터 시작되는 전도대의 전도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유아실의 방바닥에 앉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요즘 내가 아프다고 걱정하시는 김권사님이 놀래시면서 어디가 또 아프냐고 물으셨다.
요즘 에어로빅을 해서 그렇다는 대답에 '난 또.. 그것은 아픈 게 아니지' 그러신다.
어찌하였건 아픈 것은 아픈 것. 요즘 완전히 걸음이 오리걸음이다.

아직도 팔 다리 흔드는 것에 익숙지 못해 열심히 앞사람 옆 사람 봐가며 뛰는데
앞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는 강사선생님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이 거울에 비쳐졌다.

순간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허둥허둥..뻣뻣... 피식 나도 웃음이 나왔다.
어쩌겠는가. 초보 시절이 지나야 폼도 날텐데.

그러면서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나의 기억들.

중학교 무용시간에 갑자기 선생님이 앞에 나와 배운 것을 해보라고 하셨다.
열심히 해보였더니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

"잘들 봤지? 이렇게 하면 안돼요. 이렇게 막대기처럼 뻣뻣해 가지고는 안 돼."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이해한다는 듯이 쏟아졌던 아이들의 폭소.
같이 웃었다. 사실이니까.

대학교 입학 후 과대표 수련회에서의 일.
행사가 끝나고 저녁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선배들이 춤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고고가 지나고 디스코가 성행되던 시기였다.
한참이 지난 후 춤을 지도하던 선배 왈.

"너는 도저히 춤은 안되겠다. 너 같이 못 추는 경우 처음 봤다"

그래 나는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낙담은 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이후 학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했던 개강파티, 종강파티 - 보통 100명, 200명씩
장소를 빌려서 과대 과로 만나 했던 -에서 준비만 해주었다.

요즘은 그렇게 단체로 노는 것이 없다고 하두만.
다른 학교와 섭외해서 장소 빌리고 짝맞춰 주고 그리고는 앉아서 아이들 노는 것
구경하다가 마무리 해주는 봉사만 했다.

그렇게 보낸 대학 시절 마지막 4학년 봄에 졸업여행을 갔다.
보길도를 방문하고 올라오면서 유명사찰을 방문하고 내장산에 들러 마지막 밤을 보낼 때였다.

그 때 막 개장한 내장산관광호텔 디스코클럽을 통째로 빌렸었다.
주중이어서 손님은 우리 과 학생들뿐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즐거움을 조금 알았다.
박자를 맞출 줄 알게되니 은근히 재미있어지는 것이었다.
역시 나는 그 오래 전부터 가무를 즐겨왔다는 한민족의 일원이었다.

졸업 이후 직장에서 가끔 놀러갈 때면 그래도 빠지지 않고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었다.
물론 뻣뻣한 것이 어디 가랴마는 적어도 보는 사람이 혀를 차는 정도는 간신히
벗어났으니까.

그런데 이 에어로빅이 만만치가 않다.
머리로는 동작이 그려지는데 몸이 따라줘야 말이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날이 있겠지 싶어 매일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선다.

팡팡팡 팡팡팡...즐겁다.

 


Try to live at peace with ohters even though they want to fight with you.  

사람들이 당신과 싸우고 싶어해도 그들과 더불어 평화하기에 노력하라.

 

  
가는기린초


반응형
LIST

'살아가노라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쫀쫀한 너무도 쫀쫀한...  (0) 2002.08.23
만보기  (0) 2002.08.21
청계산 등반  (0) 2002.08.21
두 결혼식  (0) 2002.08.21
점 이야기 (1)  (0) 2002.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