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야기

원명원과 북경대 (중국)

평화 강명옥 2005. 7. 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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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돌아온 이후 얼마 안 있다가 감기에 걸려 계속 고생하는 바람에 계속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외출을 하였다.


어디를 갈까 찾다가 북경시내에 있는 원명원(圓明園)과 인접해 있는 북경대에 가보기로 하였다.

원명원은 청조 융성기(1709-1795)에 만들어진 총면적 347만㎡의 황제 별장이다. 처음에는 원명원, 장춘원, 기춘원(후에 만춘원으로 개명) 세 정원을 통틀어 '圓明三園'으로 불렀다.


이 원명삼원은 현재 베이징대학교, 칭화대학교의 일부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청조문화의 특색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1860년 10월 제 2차 아편전쟁 종결을 위해 침공한 영.불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서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 서서히 복구되고 있는 중이다. 원명원 입장료는 15위엔 이었는데 안에 유럽풍 건축물의 잔해인 서양루(西洋樓)를 보려면 별도로 10위엔을 더 지불하여야 했다.

 

겨울이어서 그러기도 했지만 쇠락한 왕조의 흔적같이 보일 정도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쓸쓸하였다. 정원을 죽 걸어서 도는데 거의 두시간이 걸렸다. 군데군데 아주 커다란 연못들이 있고 연꽃의 잔해들이 보였는데 제 철에는 아주 볼만한 장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이 너무 넓어서 보수를 다하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리겠다 싶고 군데군데 사람이 다니는 길을 손 본 곳은 너무 허술해서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여기저기 무너진 돌기둥에 새겨져 있는 무늬들이 너무도 세밀하고 화려했던 탓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명원을 둘러보고 나와 인접해 있는 북경대에 들렀다. 북경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편 후배와 그 동료의 안내로 북경대를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북경대는 그 넓이만 해도 상당했고 건물들이 다 유서 깊고 특색이 있어 세월의 무게와 고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원명원의 일부가 대학교에 포함이 되어 있는데 그 수려한 풍경이 학생들의 공부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기저기 건물마다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의 친필 휘호가 걸려 있었고 개화기 때의 지도적인 인물들의 동상들이 그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였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이름을 붙일 수 없다 하여 미명호(未名湖)인 호수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봄, 여름, 가을에는 캠퍼스가 너무 아름답다는 설명에 숲이 우거지면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울러 그 때에는 어느 부자교포가 지어주었다는 커다란 도서관에도 들러 중국의 미래를 담당할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분위기도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Any hour when helping others
Or when bearing heavy care
Is the time to call our Father?
It's the proper time for prayer. - Zimmerman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나
 무거운 짐을 감당할 때
 그 때가 아버지를 찾을 때입니다.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2004. 1. 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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