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숲 속의 노숙자

평화 강명옥 2005. 7.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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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천변으로 가자고 가다가 최근 주변 정리를 한 동네 골목으로 한번 올라가 볼까 하며 가다보니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기왕 들어선 것 끝가지 가보자고 하고 얼마를 올라가자 바로 꼭대기가 나왔다.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편으로 내려가기로 하고 돌아서는데 웬 점퍼가 숲에 떨어져 있었다. 음료수 먹은 페트병이나 과자봉지가 떨어져 있더니만 이제는 웬 옷까지? 하며 지나치는데 옷가지 옆 숲에 누군가 대자로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옷 임자 같아 보였는데 술이 취해 누워 있나보다 생각하고 지나쳤다.

 

산에서 내려오니 예전 살던 동네 아파트 뒤쪽이었다. 잠시 놀이터 의자에 앉아 쉬는데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벌써 날씨는 어두워져 캄캄해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숲 속에 누워 있던 사람이 정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날씨가 춥지 않으니 괜찮겠지 하다가 혹시 세상을 버리기 위해 약을 먹은 사람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났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길로 우리가 올라 간 것이 혹시 그 사람이 살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고하는 것이 낫겠다 결론을 짓고 119로 신고를 했다. 그리고는 몇 분이 지나지 않아 119 소방대원들과 경찰이 들이 닥쳤고 그 아파트 경비들이 뭔 일인가 싶어 몰려왔다. 1차 도착한 사람들은 남편이 먼저 안내했고 2차로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내가 안내해서 산으로 올라갔다. 이미 캄캄해서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올라가야 했다.

 

가보니 경찰들과 소방대원들이 누워 있던 사람을 깨워 앉혀 놓고 여러 가지를 묻고 있었다. 집이 어디인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니 노숙자라고 하며 잘 자는 사람을 왜 깨웠느냐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숲에서 잘 수 없다며 시립숙소로 가자고 하고 그 노숙자는 계속 몸을 못 가누고 머무작거렸다.

 

우리는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어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는데 산에서 내려오니 밑에서 기다리던 소방대원이 수고했다며 만나자마자 했던 이야기를 또 했다. "좀 깨워 보시지 그러셨어요." "혹시 술이 취해 행패를 부리면 어떻게 하라구요."

 

한바탕 소란을 겪고 나서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긴 했지만 개운했다. 귀찮아질까봐 신고를 안 했더라면 밤새 그 생각으로 불안했었을 것 같다.  IMF이후 부쩍 늘어난 노숙자들의 문제는 이 사회의 본격적인 문제 거리가 되었다. 얼마나 경제가 회복되고 나라 살림이 나아져야 '노숙자'란 단어가 사라지겠는지...

 

이번 일로 깜짝 놀란 것은 내가 신고하자마자 불과 몇 분만에 나타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었다. 항시 대기하며 사회의 온갖 궂은 일을 하는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존경받는 직업이라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그래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산책을 나간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샌들을 신고 나섰다가 느닷없이 두 번씩이나 산에 오른 날은 그간 슬슬 해온 산에 오르는 것에 내가 얼마나 익숙해졌는가를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Those who love Christ have a heart for the lost.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길 잃은 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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