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이야기

내 자리

평화 강명옥 2005. 8. 2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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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가기 시작한 며칠 후 주차장에 늘 하얀 색의 차 두 대가 일정한 자리에 있는 것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차번호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 차번호가 3407인데 두 차의 번호가 3476, 3492여서 무척 익숙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그 많은 차번호 중에 앞 두 자리 숫자가 같은 경우 만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매일 같은 위치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고 다른 두 차 역시 매일 그 자리에 있다. 예배 끝나고 나오면 다른 차가 더 주차되어있지만 도착해보면 여전히 그 두 대의 차가 먼저 와있다.

 

교회 안에서 내가 앉는 자리도 중앙을 바라보며 왼쪽 줄의 앞에서 다섯 번 째 끝자리로 정해져서 매일 그 자리에 앉는데 내 앞, 뒤, 옆에 앉는 사람들 역시 같은 사람들이다. 왜 그 자리인지는 특별한 이유가 없고 첫 날 가서 앉다 보니 다음날부터 자연스럽게 내 자리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정해진 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한 일이 없건만 일정한 자리에 앉는 것은 그 자리에 익숙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하다는 것이니까...

 

목사님이 몇 번 설교시간 중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항상 보면 성도들이 앉는 자리에 앉는다고. 그래서 교회에 빠지는 것이 더 눈에 확 드러나는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서울 사람들이 이사한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는데 보통 여기저기 이사를 다닐 것 같지만 거의 살던 동네에서 옮긴다고 한다. 생활하면서 익숙한 동네를 떠나기가 심리적으로 쉽지가 않은 가 보다. 하긴 우리 부모님도 결혼하신 후 47년을 같은 동네에서 사시다가 작년에 바로 옆 동네로 옮기셨는데 다시 살던 동네로 돌아가실 생각을 하고 있다. 나 역시 태어나 결혼하기까지 38년을 살던 그 동네를 떠난 후 이 동네에서 지금까지 10년이 되도록 살고 있으니 그 통계가 결코 틀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시대가 보헤미안 세대라고 한다. 직업도 평생을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여러 번 옮길 밖에 없고 직종도 여러 번 바꾸게 되는 자유로운 집시 세대란다. 옛날 평생을 한 고을에서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던 관계에서 이제는 여러 이유로 종횡무진 아무 곳이라도 옮기고 그래서 이웃도 수시로 바뀌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익숙한 곳에서 잘 떠나지 못하는 어떤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고향에 대한 무의식적인 향수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음식점에 가도 내가 먼젓번 왔을 때 앉았던 자리를 찾게 되니...

 

남북 분단이래 개성이 고향이신 친정아버지는 55년 간을 나그네로 사셨다. 고향인 개성의 선죽교며 동네와 사시던 집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에는 마치 어제 다녀오신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신다. 조만간 개성 시범관광이 있은 후에 일반 관광 길도 열린다고 하는데 꼭 같이 가시자고 했더니 가더라도 자유롭게 옛집을 방문하지는 못하지 않느냐며 기운 없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계시던 자리,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 그래도 큰 기쁨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좋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그 여행이 좋은 것은 내가 돌아갈 내 집이 있고 그 자리가 편안하기 때문에 여행이 좋은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계속되는 여행이라면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돌아갈 내 하늘 아버지의 하늘 집이 있기에 문득 문득 감당하기 어려운 허무가 밀려와도 어쩔 수 없이 참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닥쳐도 이 인생 나그네 길이 살아볼 만 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나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Dying is the last page of time and the first page of eternity.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장이며 영생의 첫 번째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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