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고향

평화 강명옥 2003. 7.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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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이 늦어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친정에서 지낸지도 두 달이 넘어간다.
장남인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이 집으로 이사한 것은 30년 전이다.
부모님이 결혼하신 후부터 올해까지 46년째 사시는 이 동네에서 나도 결혼 전까지 38년을 살았다.
내가 태어나고 살던 고향이다.

요즈음 산책을 하며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 다녀보면서 새삼 이 동네가 낯설다는 것을 느낀다.
살기는 오래 살았지만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결혼 전까지 거의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곳을 돌아다녀 본 기억이 없다.

전형적인 서울 변두리 지역이었던 이곳 장위동은 어렸을 때 장마철이면 신작로 옆을 흐르는
개울이 넘쳐 온갖 것들이 떠내려가고는 했다.
개울 옆 동네 공터에는 저녁이면 몇 십 명이 넘는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놀곤 하였다.
그 때는 나이별로 골목대장부터 서열이 정해져 있었고 나이와 상관없이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가 개울이 복개가 되어 신작로는 넓어졌고 원래 철로가 다니던 길이 대로가 되면서
신작로는 구도로가 되었다.
이제는 대로위로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고 밑에는 지하철이 다닌다.

대부분 개량한옥이었던 주택가는 이제 빌라촌이 되어가고 있으나 일반 상가 건물들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굳이 옮겨가겠다는 생각도 그렇다고 계속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살았던 것 같다.
연로하신 친정부모님에게는 특히 친정어머니는 새댁시절부터 알고 지내시던 친구 분들이 계시는
곳이라 전혀 다른 곳으로 이사하실 마음이 없으시다.
용인에 직장이 있어 새벽출근을 해야하는 동생이 한때 직장 가까이 이사하려는 생각도 했으나
부모님 때문에 이사를 포기했다.

매일 오후 집 근처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새삼스레 담장 넘어 보이는 장미 넝쿨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던 골목골목을 보며 고향 익히기를 하고 있다.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낯선 고향의 여러 모습들을 열심히 둘러보는 것은 이제 떠나면
몇 년간은 자주 올 수 없을 것이라는 데서 오는 섭섭함 탓인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살았으면서도 거의 잠자는 시간만을 보내 낯설게 느껴지는 이 고향이 낯선
가운데서도 스물스물 잊고 있었던 희미한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려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Give me, O Lord, a strong desire
To look within Your Word each day;
Help me to hide it in my heart,
Lest from its truth my feet would stray. - Branon
주여, 매일 주의 말씀 보기를
열망하는 마음을 주소서.
그 말씀을 마음에 두어
내 발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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