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동생(2)

평화 강명옥 2003. 9. 1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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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동생은 나와 나이 차가 나는 관계로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내게서
공부를 배웠다.
대학 다니던 시절 동네꼬마들을 모아 과외공부를 시킬 때 막내 동생 학년 위주로
모아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아기 적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안아보려고 애썼던 동생이다.
누나인 내가 데리고 나가면 동생 얼굴과 내 얼굴을 보고 "누나하고 동생하고 얼굴이
바뀌었으면 좋았을 뻔했네"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이니...

지금도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좋은데 올케가 지나는 말로 동생이 연예계에 진출했으면
잘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인물보다는 '끼'기 있어야 하는데 동생은 '끼'가 없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동생의 나이 사십이 된 지금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막내라고 호칭을 하는데 커다란
두 아들의 아범이 되었지만 내게는 아직도 마냥 어리게 느껴지는 막내 동생이다.

동생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기업에 입사해서 여러 경험을 하는 가운데
아무래도 전문직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생에게 내가 진학하려고 했던 의대를
적극 추천하였었다.

그래서 자신은 의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란 동생은 입학 시 공대를 추천하는
선생님의 권유대신 내가 성적과 커트라인을 비교해서 고른 학교의 의대에 원서를
넣었다.
원서에는 3지망까지 써넣게 되어 있었는데 1지망 의대를 쓰고 2지망은 약대로 쓰라고
하고 3지망은 원하는 대로 써넣으라고 해서 대충 골라 쓴 것이 전기공학과였다.

결과는 의대합격을 자신했었는데 그 해에 수험생들의 성적이 많이 올랐고 의대에
하향지원이 많았던 탓에 3지망 합격이 되었다.
재수를 하겠다는 동생을 말려서 입학을 시켰는데 자신이 전혀 고려해보지 않고 생각
없이 찍은 학과에 다닌 다는 것이 동생을 괴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후에 동생은 학교와 학과에 별 애착이 없었고 재수를 하겠다고 했으나 다시 말리고
4학년이 되어 졸업할 무렵에 또 한번 취직시험이 아닌 편입시험을 치르겠다는 것을
또 말려야 했다.

그 때 했던 동생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선택한 과에 들어가 공부하고 싶어요. 그냥 연필로 찍은 과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과로 말이지요. 그건 어느 과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차마 누나인 내게 원망의 말을 직접하지 못하고 재수소동과 편입소동을 몇 번씩
치른 것으로 나타났다.

막내 동생 역시 대학 졸업 후 내가 다니던 기업에 들어와 올해 초까지 중간에 잠깐
다른 기업에 다니긴 했지만 원래 자리로 돌아왔고 잘 다녔다.
단독 해외파견을 결정해야 될 시점에 가족과 그렇게 오래 떨어져 지내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동생은 사표를 냈고 지금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조직 생활은 그만하고 싶고 그 끝이 보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신이 혼자
하는 것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가족들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택시기사 자격증까지 딴
큰 동생과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막내 동생을 보면서 나는 어린 시절 두 동생을
데리고 이야기를 해주던 나에게서 내가 벗어나 본적이 없었다는 것을 느낀다.

새삼 이 날까지 이 두 동생들이 반듯하게 자라 제대로 된 사회인의 역할을 하고
각자 가정을 이루고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는 것을 감사 드린다.
그리고 격변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다시 자리를 잡기 위해 애쓰는 동생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 고생을 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When people are more important than profits, everyone profits.
이익보다 사람을 우선할 때 모든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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