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들

가을 철쭉

평화 강명옥 2003. 11. 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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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겨울에 들어서는 늦가을답지 않게 날씨가 따뜻하였다.
연구실에 나왔다가 도서관 가는 길에 뭔가 낯선 느낌을 주는 것이 있어 돌아 보았더니 빨간 단풍나무 옆에 있는 철쭉나무에 꽃이 몇 송이 피어있는 것이었다.

사방이 온통 저물어 가는 낙엽의 마지막 화려함의 잔치장 같은데 봄의 옅은 분홍빛 꽃이라니...
한참을 서서 물끄러미 보는데 역시 이 가을에 그 분홍빛은 꽃이 예쁜 데도 불구하고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화원에 가면 사시사철 언제든지 철쭉꽃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바깥에 심겨져 있는 철쭉꽃을 가을에 보는 기분은 정말 달랐다. 저 꽃은 잠자다가 날씨가 따뜻하니 봄 인줄 알고 꽃을 피웠을 텐데 꽃이 떨어지고 다시 봄이 왔을 때 꽃을 피울 여력이나 있을런지 괜한 걱정이 들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평화시에 제 역할을 할 사람이 전시에 나면 그 고달픔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거꾸로 안정이 필요한 시대에 전쟁을 이끌 인물이 나서면 시대 자체가 흔들려 버린다.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에 너무 앞선 선구자들이 그렇게 시들어 갔던 일들이 많았다.

봄이 오기도 전에 피어버린 철쭉처럼 제가 있어야 할 시기와 장소를 모르거나 알고도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면 참 그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자신이 물러서야 할 때를 모르고 버티고 있는 사람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주위의 시선들도 딱하고 그런 본인은 더 딱하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
나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주위의 시선이나 눈치도 모르면서 엉뚱한 것을 하고 있거나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철 잃은 철쭉꽃이 내가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만든 하루였다.


Talk with God - He longs to hear from you.
하나님과 이야기하라 - 그분은 당신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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