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7년전 그날에 대한 단상

평화 강명옥 2003. 11. 2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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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첫눈이 내린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나는 한 남자와 백년을 같이 살기로 약속하는 결혼식을 올렸다.

눈이 오는 토요일이라 여러 친지들이 남산 초입에 있는 식장으로 오다가 교통 혼잡으로 시간이 너무 걸려 참석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전화를 결혼 후에 받았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 늘 조용할 것을 청하시는 엄격한 목사님으로 인해 한시간이 넘는 예식은 엄숙(?)하게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의 주례사는 아직까지도 시댁에 가면 얼마나 훌륭한 주례 말씀이었는가 이야기되고 있다. 축가는 교회의 성가대 청년들이 정성스레 불러주고 직장의 신우회가 또한 정성스레 불러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순서가 다 끝날 무렵 방송 안내를 맡았던 동생이 메모를 목사님에게 전한 후 참석했던 DJ에게 한 말씀을 부탁했고 그 한 말씀이 길어져서 또 한번의 주례사가 되었다. 대선 1년 전이라 무척 바쁠 때였지만 몇 년간 함께 일했던 신랑을 생각해서 그 당시 처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 다음날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목사님으로부터 결혼예배도 예배이므로 그렇게 인도자 외에 다른 사람이 끼어 들면 안 된다는 엄중한 질책(?)을 받았다. 결혼식 중간에 와서 그 장면만을 보고간 지도교수님은 몇 년 동안 DJ가 주례한 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둘 다 일 때문에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미국은 공교롭게도 가 본 적이 없어 신혼여행지로 다녀왔다.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 뉴욕 세 곳을 방문했는데 가는 곳마다 친구들과 동료들을 만나 좋았고 도시를 둘러보는 것은 관광객들을 위한 버스투어로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다녔다. 박물관에 들렀을 때 오래 보다가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다음 방문지로 쫓아가 합류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여러 모임에 참석하느라 정장을 입은 적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신혼여행사진을 본 사무실 직원들 왈,

"두 분 출장 갔다 오셨어요? 이게 무슨 신혼여행사진이에요?"
하긴 지금 내가 봐도 그렇다.

그렇게 시작한 함께 하는 생활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변함 없는 것은 그 때 보고 느꼈던 신랑이 지금의 남편으로서도 참 한결같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늘 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남편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그 기념일 날 전화를 했다.
"축하합니다."
"뭐? 왜?"
"오늘이 우리가 결혼한 지 7년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난 정말 까마득히 몰랐네..."

그래도 밉지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생일도 모르고 지나갈 만큼 기념일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부족한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이 있을 때는 미리미리 알려서 '옆구리 찔러 절 받기'로 지냈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2003년 11월 씀)

 

* 결혼9주년인 이번 해에도 특강 듣고 청강원우(?)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바람에 별다른한 행사를 하지 못했는데 10주년 되는 내년에는 특별한 기념행사를 정말 준비해야겠다.    


Amid the thorny trials of life
God's buds of beauty grow;
If we'll rejoice and not complain,
His peace and love we'll know. - Sper
인생의 고통 많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봉오리는 자라나네.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기뻐하면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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