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안 청소를 하면서 부쩍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의 숫자가 상당한 양으로 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매일 머리를 빗을 때마다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의 양이 얼마 안 되는 느낌도 들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흰머리와 함께 내 머리카락에도 노년이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시대의 우탁(1262∼1342)이 지은 시조 탄로가(嘆老歌)에 나타난 이야기가 아주 멀고 먼 어쩌면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바로 내가 그 때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예전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었다더니 나이 들어 힘이 빠지는 것처럼 머리카락도 힘이 없어 떨어지는 것이 꼭 가을나무로부터 떨어지는 나뭇잎 같다. 낙엽 같은 머리카락이라...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하는데 이 나이 드는 것은 바쁘게 지내는 사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온 듯하다.
"선배님은 이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한참 나이 어린 후배가 오랜만에 만나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할 때 물어본
말이었다. 잠시 아니 어쩌면 그보다는 더 긴 시간을 망설이듯 생각하다가 대답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후배에게 대답은 하였지만 아직도 그 물음은 내게 계속되고 있다.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는 한다.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고 어렴풋이 나마 내게 주어진 소명을 짐작하고 있어 지금의 내 생활이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한창 청춘일 때부터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할 일을 우선 해서 해왔던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터라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잘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이겠다.
백발이 달려와 등뒤에 딱 붙기 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더 열심히 찾아야 할까보다.
We can really live if we are ready to die.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진정으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