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야기

빨간불? No, 세력이 제일 (중국)

평화 강명옥 2006. 1. 1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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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북경 도로는 그런대로 널찍널찍 해서 시원한 느낌이 많다. 물론 시내 한가운데는 서울의 전통거리가 좁듯이 그리 넓지 않은 느낌이지만 대체로 길을 잘 만들었다.

특이한 것은 자전거 도로가 중요한 도로로서 확고하게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자전거 도로 위로 온갖 옷차림의 남녀노소들이 자전거로 오가고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여유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창 러시아워 때 차도가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에는 중국이 과연 이 차도에 비하면 상당히 넓은 자전거 도로를 언제까지 유지하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차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던 전통이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것인데 자전거가 주인이던 시대의 도로가 주인공의 자리를 차에게 내준 지금에는 여기 온지 얼마 안된 이방인인 나의 눈에도 차도에 비해 자전거 도로가 무척 넓게 느껴지니...

내가 북경에 도착한 다음날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도로 건너는 법이다. 아파트 옆 길 건너에 볼 일이 있어 길을 건너는데 깜짝 놀랐다. 분명히 빨간 불인데도 사람들이 그냥 건너는 것이었고 그렇게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차들도 슬슬 거리를 둘 뿐 아무런 불만의 표시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널목에 파란 불이 켜져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상관없이 차들이 슬슬 눈치를 보며 진행을 하고 있었고 그 사이를 조심하며 사람들이 건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빨간 신호등 파란 신호등이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차들도 사람들도 그 색에 상관없이 지나가고 건너가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빨간 불 파란 불 관계없이 건너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차들이 많으면 차들이 가는 일종의 세력싸움같이 보였다.

그 와중에 사고가 안 나는 것이 다행이다 싶은데 어쩌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서로 언제 차가 지나가고 사람이 지나갈지 모르는데 차가 속력을 낼 수 없고 또 속력을 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이 신호등에 상관없이 사는 습관이 제대로 지켜지는 교통질서가 확립되기 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역시 길을 건널 때 차가 없다 싶으면 그냥 건너도 괜찮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하던가. 아직까지는 무의식적으로 빨간 불이 켜지면 심리적인 거부감이 생겨 발이 떨어지지 않지만 차차 자연스럽게 북경에 사는 사람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감이다.
(2003. 08. 25. 씀)

In every desert of grief, God has an oasis of grace.
모든 슬픔의 사막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오아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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