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자리끼

평화 강명옥 2006. 2. 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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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른들 잠자리 머리에는 늘 물 대접이 놓여 있었다. 요즘 그 자리끼의 필요성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이 말라 있어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물부터 마시게 되는데 앞으로는 나도 머리맡에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살았던, 내게는 그럴 때가 오리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때가 서서히 아니 급작스럽게 오고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건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시는 것이 장에도 좋고 소화 기능에도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사람의 몸은 70%가 수분이니 하루에 물 여덟 잔은 기본으로 마셔야 몸의 기능이 원활해진다고 한다.
입안에 침이 잘 고이지 않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징조이니 혀로 이 뒤쪽과 귀 양쪽 밑을 자극해서 침이 생기게 해야 좋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식사를 할 때 외에는 거의 물을 마시지 않고 살던 내가 스스로 물을 찾게 된 것을 보니 이제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나무가 가을이 되면 생기를 잃는 것이 자연스럽고 무성하던 잎들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맞이하는 것을 당연하게 보면서 우리 인생이 마찬가지로 서서히 생기가 떨어지는 것을 그리 힘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벌써 오래 전부터 저녁이면 자리끼를 준비하시던 친정아버지의 기력이 예전 같지가 않다. 90가까운 삶을 살아오시면서 그래도 건강하신 모습이었는데 지난주 생신을 맞이하셨을 때에는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늘 허리가 꼿꼿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보건체조를 하시고 동네 골목을 다 쓰시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자리 보전을 하고 누우신 모습을 뵙자니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으셔도 차갑기만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오랜 세월 아버지로 계셔주신 것도 감사한데 더 욕심을 부립니다. 지금 보다 더 좋은 날, 지금 보다 더 즐거운 날을 보시기까지 기력을 찾으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팔, 다리에 힘을 주시옵소서.

 

스스로 거동하기 힘든 어린 아이로 돌아가시는 요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아버지 머리맡의 자리끼를 보면서 아버지가 가보고 싶어하시는 고향 개성까지 갈 수 있는 날이 당겨 오기를 소망하였다. 

 

 

When there seems to be no way, God can make a way.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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