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

평화 강명옥 2006. 3. 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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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기력이 없으셔서 전혀 일어나시지를 못하니 어른용 기저귀를 사오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기저귀를....

 

허둥거리며 슈퍼로 가서 기저귀 코너에 가서 찾았는데 아무리 뒤져도 아기용밖에 없어서 직원에게 어르신용 기저귀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찾아주면서 하는 말이 "이게 잘 나가요." 하는 것이었다. 잘 나간다면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만큼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일단 두 뭉치를 사들고 갔다. 그러면서도 내내 어찌 이런 일이, 어찌 이런 지경까지. 하는 한숨만 나왔다. 아버지는 그저 누우신 채로 자는 듯 깨는 듯 그렇게 계셨다. 특별히 아프신 데는 없다 하시니 병원에 모시고 가지도 못하고 전적으로 어머니가 시중을 드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하늘 나라로 가실 날이 부쩍 앞으로 당겨진 것 같아 마음이 허허로와져서 돌아왔다. 다음날 어머니와 통화하는데 기저귀를 샀다는 말씀을 들은 아버지가 억지로 화장실 출입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다음 날 화장실에서 넘어지신 이후에는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며칠 후 다시 찾아뵈었을 때 더 기력이 없이 보이는 아버지에게 기분이 어떠시냐고 했더니 "심심해"라고 하셨다. 아버지 옆에서 성경을 읽어드리고 찬송가를 불러드렸다. 아버지의 누워 계신 모습을 뵙고 돌아오는 날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해지곤 한다.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아프지 않고 곱게 가는 것이 큰복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호를 받으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자식들이 마지막 생명의 심지를 태우고 계시는 부모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산다. 그저 통증 없이 불안감 없이 평안하시기를 기도하는 일 외에는...

 

중풍으로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불신에 대해 눈물로 회개하며 아버지의 회복을 간구 했고 그리고 아버지가 병에서 회복하신 때로부터 꼭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평생을 당신의 양심만으로 사신 다며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신 지도 2년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마지막이 크게 힘들지 않기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 허락하신다면 다시 기력을 회복하시고 고향인 개성 가는 길이 열릴 때까지만 이라도 이 세상 나그네길을 연장하셨으면 좋겠다.   

 

 

Prayer is an open line to heaven. 
기도는 천국과 연결된 직통 회선이다. 

 

* 이 글을 쓴 이틀 후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례식 때 조문 온 친척들이 생전에도 그렇게 깔끔하시더니 가시는 길도 고통 없이 깨끗하게 가셨다고, 호상이라고들 하였다.

 

입관 때 정신 없이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뵌 아버지의 모습은 고요하고 역시 깨끗한 모습이셨다. 아버지는 벽제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교회 장지에 모셔졌다. 장례식이 끝나고 삼일 째 추도기도회를 가졌다.

 

장례식이 끝난 날 밤 아버지는 꿈속에서 생전처럼 양복을 단정하게 입으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평안하신 모습으로 내게 13장의 아주 비싼 미용티켓을 주시면서 빠지지 말고 꼬박꼬박 잘 다니라고 당부하셨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아버지까지 모두 13명이었다.

 

하늘나라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안을 누리시고 계시는 아버지가 벌써부터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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