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임에서 한 지인이 딸의 신발 수집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명품운동화 또는 구두수집 취미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오래 전 필리핀 전대통령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의 신장에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던 구두가 공개된 적이 있다.
그 때는 하필 구두 수집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몇 년 전 해외에 나갔을 때 일이다.
살림도 웬만한 것은 다 정리했으니 신발은 말할 것도 없었다.
늘 신고 다니는 편한 신발 한 켤레와 역시 편한 구두 한 켤레,
결혼식 날 한번 신고는 발이 아파서 모셔만 놓은 구두 한 켤레와 여름 샌들이 다였다.
그런데 이런 저런 공식 모임이 많다보니 구두를 신을 일도 늘어나는데
노상 한가지만 신고 다니자니 그것도 참 민망한 일이었다.
중간에 논문 쓴답시고 한 달간 돌아왔던 적이 있다.
집 근처에서 비교적 괜찮은 가격에 구두를 파는 것을 보고 한꺼번에 다섯 켤레를 사 가지고 갔는데
그 구두들을 한번씩 제대로 신어보기도 전에 급하게 귀국하게 되었다.
그 때 또 한번 느낀 것이 참 사람이 내일 일도 모르면서
미련하게 뭔가를 장만하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의 신발장에는 그 때 그 구두들이 그대로 모셔져 있다.
평소 발이 아파서 몇 년 신은 낡은 편한 신발(일명 할머니신발)을 주로 신고 다니다 보니
나머지 구두들은 땅을 밟아볼 일이 없다.
한번 신고 도저히 신을 엄두가 나지 않는 신혼여행구두, 한꺼번에 산 다섯 켤레의 구두,
너무 낡아서 수선을 맡긴 편한 구두, 샌들, 등산화, 운동화, 골프화, 간편화(등산 및 걷기 겸용)...
몇 주 전 비교적 오래 신어도 괜찮은 정장용으로 단화를 산 것까지 세면 열 손가락을 넘는다.
언젠가는 과감하게 치워버릴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신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발이 아파 신지도 못하면서 모셔만 두고 있는 내게도 혹시 신발수집벽이?
Compassion never goes out of fashion.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절대로 퇴색되지 않는다.
'살아가노라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시간의 외박(外泊) (0) | 2006.11.11 |
---|---|
밤에 피는 꽃 (0) | 2006.11.08 |
호랑이 장가가는 날 (0) | 2006.11.04 |
5만명이 모인 경기장 한가운데를 걸어다니다 (0) | 2006.11.03 |
평화 할미 (0) | 2006.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