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하여

술 권하는 사회

평화 강명옥 2006. 11. 30. 09:29
반응형
SMALL
 

예전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에 <술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단편소설이 나왔다.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애국지성들이 절망에 빠져 술을 마시고 주정꾼으로 전락하는데 그 책임이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아내가 한탄하는 말이 있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 하는고!”  


내가 술을 마셔본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였다.

학교는 여자 대학이고 ‘미션스쿨’이라  신입생 환영회에서고 어디서고 술이 나온 적은 없다.


어느 날 친구가 이제 우리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한번 마셔보자 했는데 장소를 자기 집으로 잡았다.

셋이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컵에 따라진 맥주를 4분의 1이나 마셨을까 했는데 얼굴이 화끈화끈하더니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술을 엄청 마신 듯이 새빨간 얼굴을 하고 눈이 감기는 나를 보고는 친구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한 말이 있다.

 

‘주동(酒童)이다. 주동(酒童)’     


그 때 일찌감치 내 술 실력을 알았다.


이후 다양한 써클 활동을 하였고 다양한 자리가 마련되었으나 그저 자리에 참석하여 담화를 즐기는 생활이었다.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도 숱한 자리에 참석은 하였어도 겨우 몇 모금 마시고는 잔에 술을 따라놓고 잊어버리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다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내 목소리가 비교적 굵은데다가 털털한 모습에 ‘술 참 잘마시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있다.


그러다가 그나마 입에 대는 정도의 술도 안마시게 된 계기가 생겼다.

집사가 되고 나서도 직장 생활의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여전히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던 어느 날 그야말로 세 모금 술을 마신 다음날 내 손바닥 전체에 좁쌀 같은 기포들이 생겼다.

가렵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금주(禁酒)’의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어느 자리에서고 ‘못마신다, 안마신다’라고 선언을 하였고 이후 공식적인 ‘안주킬러’로 지내고 있다.


술자리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혼자 술 마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시고 흐트러진 상태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다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맑은 정신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대화를 즐기고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잘 지내오고 있다.


몇 달 전 새로 시작한 일터에서 사람들과 상견례 겸 저녁을 한 적이 있다.

술을 받아놓고 마시는 것을 거절했더니 워낙 활발한 기상을 가진 젊은 친구가 한마디 했다.


“술 마시지 않으려면 다시는 여기 내려오지 마세요!”

“음... 더 자주 열심히 내려 와야겠네요.”


그것으로 상황 종료였고 가끔씩 보는 그 친구하고도 인사 잘하고 잘 지낸다.

이제는 주변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서 당연하게 음료수를 따로 시킨다.


확실히 조직에서건 개인적인 만남이건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셔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더욱이 술을 마시며 같이 어깨동무하고 노래라고 부르면 더할 것이다.

그리고 늘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술 못 먹는’ 나 같은 이방인도 같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늘 좋은 사회이기를 바랜다.



God's warnings are to protect us, not to punish us.

하나님의 경고는 우리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