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운전에 관한 일화, 그 뒷이야기

평화 강명옥 2001. 12. 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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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천공항을 다녀왔다.
오전에는 운전연수로 강사와 함께, 오후에는 혼자서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 마중하러...

운전하는 것이 달갑지 않아서 남편의 하소연, 설득, 주기적인 잔소리 - 지방의 시댁 갈 때, 해외출장 갈 때, 부부모임 갈 때 등등 - 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왔다.

남편은 나한테 운전시키는 것은 완전히 포기하고 가끔씩 넋두리처럼 이야기를 해왔었다.
바쁠 때 면허 따라고 더운 여름날 운전학원에 모시고 가고 기다리고 모시고 오고 했던 노력에 대한 대가는 어디서 받아야 되느냐, 남들 다 쉽게 배워 하고 다니는 운전인데 밥먹듯이 걸어다니듯이 하는 것을 왜 안 하려고 하느냐....

그동안 계속 몸이 안 좋은 상태로 병가를 내다가 아무래도 건강회복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사무실을 정리하였다.
사표를 내러 가는 날 아침 남편은 지나가는 말로 주중에 전혀 차를 사용하지 않아 차 상태가 안 좋아진다며 친척에게 며칠씩 사용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어차피 차는 나의 관심 밖의 일이어서 알아서 하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차안에서 문득 묘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운전을 하고 다닐 때가 되었구나 하는...동시에 요즘의 내 주변의 여러 변화가 떠올랐다.

우선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던 남편이 옛 직장에 복귀하면서 전철로 출퇴근을 하게 되어서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늘 서 있다는 현실이다.

운전 좀 해보라고 남편이 권할 때마다 나한테 맞는 작은 차를 사면 하겠다고 대답을 해왔었는데 막상 차를 사도 사무실이 명동이라 주차 문제가 있어서 차를 가지고 다닐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안 하겠다는 대답과 같았다.

다음은 처음에 운전을 배우려고 마음먹었을 때의 목적이 떠올랐다.
교회가 서울에서 화정으로 이사가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교회에 다니기 위해서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그 초심(初心)이 생각났다.

다른 변화는 남편이 사무실 일로 해외출장이 잦아지면서 혼자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는 일이 늘었고 오가는 길이 번잡스러워졌다.
수요일에 성경인도자공부를 하는 날은 늦게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늘 데려다 주시는 주권사님이나 조집사님에게 번번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나의 사무실 정리로 차를 쓸 여유(?)와 시간이 늘었다는 점...

혼자서 차를 몰고 가서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공항을 다녀오고 나니 참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래도 진작 할 걸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 모든 상황이 맞아서 할 때가 되어야 하고 그 때가 되어 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앞으로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할 일이 늘 것 같다.

소감을 물었더니 남편 왈 "이제 정상이 되었군.진작 그랬어야지."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차를 끌고 공항에 마중간 것이 남편에 대한 나의 선물이라는 생색(?)에 시큰둥한 대답으로 그동안 운전 안 하겠다고 버텼던 나를 쥐어박고(?) 싶어했던 남편의 마음이 읽혀졌다.

스스로 대견해 하는 내가 몇번씩이나 격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생각하냐 등등 물어보고 답을 유도하고 한 끝에 겨우 집에 도착해서야 "수고했다."는 답을 들었다.

완전히 옆구리 찔러 절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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