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공포의 부엌살림

평화 강명옥 2001. 12. 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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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0여 년 가까이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었던 내게 부엌은 참 먼 장소였다. 학교 다닐 때에도 대부분 학교 일을 맡아 했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모임과 활동이 있어 집에 일찍 들어가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형편은 졸업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야근과 모임 때문에 내 귀가 시간은 늘 늦었고 사실 저녁밥을 집에서 먹은 횟수도 따져 보면 얼마 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집에서 우리끼리(내겐 남동생 둘이 있다)있어 라면을 끓여먹을 때에도 주로 동생들이 끓여서 같이 먹었기 때문에 내가 부엌에 들어가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동생이 "누나가 끓여주는 라면 한번 먹어봤음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무정해서가 아니라 먹고 싶은 사람이 끓여 먹으라는 누나의 권위(?)를 동생들이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공부만 해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나중에 어떻게든 부엌일을 가르쳐 보려고 시도하셨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하신 후 "내가 딸을 잘 못 가르쳤다"라고 한탄하셨다. 먹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만드는 일에는 더더욱 멀었던 내게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무서웠던 것이 바로 부엌일이었다.

결혼 후 한동안 음식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역국 끓이는 법, 김치찌개 끓이는 법은 남편에게 배웠고 매번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요리책을 보고 또 보고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들의 수고와 노고에 대해 음식을 만드는 손길의 귀함에 대해 깨달았고 어머니께서 반찬의 양념에 대해 아까워하시던 마음이 이해되었다. 내가 음식을 만든 이후로는 먹다 남은 반찬의 조금이라도 버리기가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저녁준비 하려면 거의 두시간이 걸려 해내는 나의 노고(?)에 맛있다고 칭찬하던 남편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식단에 대해 이견을 내기 시작했다. 음식 만들다가 이것도 넣어볼까 저것도 조금 넣어볼까 하고 만든 나의 창조(?)적인 작품보다는 원래 고유 음식 메뉴대로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남편의 요구대로 시댁에 갈 때마다 시어머니 만드시는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고 몇 가지에 대해서는 "똑같애, 합격이야"하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그런 대로 해나가지만 오랫동안 공포의 지대로 남아 있던 부엌 살림은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딸을 잘 못 가르치신 죄로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가끔씩 들르셔서 이것저것 밑반찬을 만들어놓고 가시며 전화로 늘 밥을 잘 해먹고 지내느냐고 확인하시느라 고단하시다.

그러나 아픈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가셔서는 "우리 애기 데리고 왔어요. 진맥 좀 봐주세요" 하시는 어머니 말씀에서 40 중반에 이르러 가는 딸을 여전히 애기로 보시는 어머니가 오늘날 나로 하여금 부엌을 그토록 멀게 느끼도록 원인 제공을 하셨지 않은가 하는 핑계 아닌 핑계가 슬그머니 떠오른다.


The mouth of the righteous is a fountain of life,

but violence overwhelms the mouth of the wicked.(Proverbs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언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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