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먹는다는 원칙을 깨고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항상 바쁘게 사는 나에게 쉼을 주고 좋은 친구들과 풍경 좋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친구의 계획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그냥 가까운데서 간단히 먹자는 나의 제안은 이 날을 기다려왔다는 친구의 말에 그냥 묻혀버렸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택시를 타고 남산에 갔다.
이미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라 뷔페식당은 한가했다.
이것저것 입맛 당기는 대로 가져다 먹으며 창 너머로 보이는 경치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사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사회 이야기 등...
그렇게 시작된 점심시간은 세 시간을 넘겨 마감을 하고 다음 코스로 옮겼다.
최근에 청운동으로 이사한 친구가 집 옆의 초등학교 운동장과 집 앞의 고등학교의 담쟁이 이야기를 하며 아주 행복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친 김에 그렇게 친구를 행복하게 만든 집과 동네를 구경하자고 나섰다.
점심으로 거금(?)을 쓴 친구에게 너무 무리했다고 했더니 상당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는 것이 좋고 그것은 금액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크다. 돈이 많다고 잘 쓰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쁘게 살다 정말 좋은 것을 잊고살게 된다. 우리가 언제 시간 맞춰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오늘 정말 좋은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
십여 년 이상 철학연구모임에 출석하며 80대 어르신 친구와도 대화를 나누는 친구는 친목모임과 봉사모임도 여러 개라 바쁘게 지낸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걷는 거리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경복궁을 자주 방문하고 가끔은 버스를 타고 남산 드라이브를 하며 삶을 즐긴다고 한다.
이야기하다 보니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들 각자가 서울 거리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한 서울 동쪽에 사는 친구는 이 친구의 권유를 받고 종로구 쪽으로 이사를 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친구가 사는 동네를 둘러본 후에 적극적으로 옮길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는 나는 당장은 괜찮은데 향후에 집까지도 가까이 옮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양천구에 <피스빌>을 짓고 심각한 부동산 경기로 인해 일단 이사한 나로서도 집만 빠진다면 언제든지 옮길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만나면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 가까운 곳에 살며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것에 모두 동의를 하였다.
“사는 것이 별것 아니고 정말 금방이야. 나는 고층 건물이 없는 우리 동네가 너무 좋아. 앞으로 이사 갈 생각도 없어. 여기서 노후를 잘 보낼 생각이다.”
친구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는데 분위기로 봐서 조만간 지척 간에 모여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모임은 내가 잡기로 하였는데 머릿속에서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 좋은 곳이 여러 군데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친구가 오늘을 기다렸다고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어디서 만날까를 궁리하는 마음이 박하사탕 맛처럼 화~해지는 것을 느꼈다.
'살아가노라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순 시어머니의 자작시 낭송 < 갈대밭에서 > (0) | 2009.07.18 |
---|---|
참치비빔국수 (0) | 2009.07.16 |
작은 운동회 (0) | 2009.06.29 |
어머니와 딸 (0) | 2009.06.05 |
GIP 삼정서헌(三正書軒) 원훈(院訓) (0) | 2009.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