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바다 위를 걷다

평화 강명옥 2005. 9. 2.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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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볼 일이 있어 오후에 외출하는데 기력이 딸리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일을 마칠 때까지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했는데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간신히 조금만 조금만 하며 버티고 집에 들어섰을 때는 꼼짝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맥이 풀리고 힘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고 밤새 열이 나서 의식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던 것 같다. 놀란 남편은 찬 물을 먹이기도 하고 열나는 팔다리를 주무르기도 하면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는데 나는 고열에 두통이 심한 상태라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집에 아스피린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먹고 간신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열은 어느 정도 내렸는데 구토를 하고 기운을 차릴 수가 없는 상태는 계속 되었다. 결국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말자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병원 의자가 누울 수가 없게 되어 있어 온갖 포즈를 다 취하며 늘어져 있었다. 정확한 병을 알기 위해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채혈을 하고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아 나왔다.

 

약국 들렀다가 집에 와서 정신 놓고 있는데 남편이 죽 집에 가서 죽을 사왔다. 간신히 일어나 죽을 먹고 나서 약을 먹은 후 또 잠이 든 건지 기절을 한 건지 정신이 없었다. 몸에 열이 난 이후 앉아 있질 못하고 계속 누워 있는 바람에 허리가 아파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던지...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룻밤을 자고 나서는 열도 많이 내리고 부었던 목도 조금 가라앉았다. 기운이 없어 눈을 제대로 못 뜨고 늘어져 있기는 해도 정신이 드니 살 것 같았다. 대신 온 몸이 여기저기 아픈데 그것은 참을 만 했다. 고열로 인해 쩔쩔 매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상태는 괜찮아지고 있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는 이상이 없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 갑자기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산다. 이렇게 한바탕 소란을 겪을 때면 더욱 그렇다.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도 후회할 일은 없는가? 그동안 있는 자리에서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섭섭할 일 만들지 않고 내가 해온 일 미련 없으니 특별히 후회할 일은 없다.

 

다만 한가지, 내가 일찍 세상을 떠난다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남편 옆에서 내가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한다는 그것이 제일 안타까울 따름이다. 얼마전 남편과 산책하고 오는 길에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내가 오래 살아야 하는데.. 내 임무가 자기 옆에서 사는 거잖아'라고 말해서 남편으로 하여금 실소를 하게끔 만들었다.

 

고열로 비몽사몽 헤매는 중에 꿈을 꾸었다. 바다 위에 내가 서 있는데 아주 단단한 땅위에 서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앞에는 해가 떨어지며 붉게 노을진 하늘이 수평선 위로 보였고 양 옆 사방으로는 잔잔한 바닷물이 평화롭고 바다 속에 꽉 찬 여러 가지 것들이 보였다. 내가 바다 위에 서 있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바다 위를 걸어보다니.....   
   

 

Delay is not denial-pray on!
 기도응답이 늦어도 거절이 아니다. 계속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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